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청주(1)
맨 처음, 서점과 그리고 그 서점을 지탱하는 서점원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그가 떠올랐다. 청주 꿈꾸는 책방의 점장, 정도선. 그와 나는 한때 같은 서점에서 근무했었다. 경남 진주의 진주문고가 바로 우리 인연의 시작점이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가 내려와 진주문고라는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을 즈음, 나는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진주로 내려와 일할 곳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진주문고에서 직원을 구하고 있었고, 책과 가까이 지내는 서점원의 삶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막상 서점원이 되어보니 내 생각처럼 그 생활이 로맨틱하진 않았다.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손님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여느 일터와 마찬가지로 서점도 나름의 치열한 방식이 있었다. 그 치열한 방식에 점차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항상 이사할 때도 책 짐이 제일 무거워서 낑낑거렸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근력이 생긴 건지 자연스레 많은 책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는데, 그는 진주에서의 생활을 뒤로한 채 원래 자신이 있었던 도시로 떠났다. 짧고 굵게 그와 함께한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비롯해 때로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그는 내 인생 첫 멘토였다.
그 누구보다 서점이라는 공간에 잘 어울리는 그를 만나러 나는 청주로 간다. 청주로 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두근거린다. 곳곳에 그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서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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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타고, 꿈꾸는 책방으로 곧장 갔다. 책방의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에서부터 느껴지는 섬세한 손길. 그가 있는 장소가 맞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방의 풍경들. 주말이어서인지 책방에는 가족 손님이 많았고, 서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서가 근처에 머물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그림 서가를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점의 한쪽 벽면을 그림 서가로 꾸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갔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기획과 그의 아내인 진희 언니의 디자인력이 최상의 시너지를 이루어낸 결과물이 지금 내 눈앞에 선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책방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슬며시 그가 다가와 간단히 서가에 대한 설명들을 해주었다.
“그림 서가뿐만 아니라 곳곳에 주제별 분류의 서가들이 우리 서점엔 많아. 예를 들어 이런 스토리 책장 시리즈도 그런 것의 하나지.”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스토리 형식의 서가가 내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의 서가라면 페이스 진열보다는 책등이 보이게 꽂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야 책을 많이 꽂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꿈꾸는 책방은 달랐다. 불필요하게 많은 책을 가져다 놓기보단 양질의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의 열정이 페이스 진열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여기는 우리 책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들. 2017년에 화제였던 주제들을 알파벳으로 나누어서 키워드 형식으로 볼 수 있게 해놓았어. 옆으로 돌면 따로 이름은 붙이지 않았지만 ‘함께 살기’라는 주제로 자연과 농어촌에 대한 책들을 진열해 놓았고. 또 한 바퀴 돌면 베스트셀러만큼이나 잘 나가는 코너가 있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는 주제로 잊지 않고 한 번쯤은 다들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것들을 키워드별로 묶어 놓았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서가에 붙은 이름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배움을 위한 공부가 아닌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랑, 죽음, 청춘이라는 이름들이 기존의 공부라는 딱딱한 단어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서가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던져주는 서가. 강렬했다.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게 내 뇌리에 이 서가는 다가와 박혔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주제별 분류들을 점점 더 늘려갈 생각이야. 사실 큰 분류는 독자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서점원들이 책을 편하게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같은 거거든. 물론, 그렇게 하면 손도 많이 가겠지만 주제별 분류가 늘면 늘수록 책방이 더 알차질 거라고 나는 생각하거든.”
이미 충분히 분류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보다 주제별 분류를 더 늘려 갈 거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서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나왔다. 청주는 참 복 받았다. 그와 같이 열정 넘치는 서점원이 서점을 가꾸어가는 ‘꿈꾸는 책방’을 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