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 걷기 길과 수암골 벽화마을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청주(2)

by 석류


IMG_0791.JPG 초록초록한 나무들 사이로 옮기는 발걸음이 경쾌했던 우암산 걷기길.
IMG_0798.JPG 3.1 운동의 정신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던 삼일공원.
IMG_0800.JPG 빛바랜 태극기를 보자 울컥한 마음이 들었던 건 왜였을까.



서가들을 구경하고 나와, 걷기 위해 우암산 걷기 길을 찾았다. 삼일공원에서부터 시작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코스로 정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삼일공원은 이름처럼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공간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은 공간이었지만, 경건하고 숭고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삼일공원의 한편에는 우두커니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벤치 위로 빛바랜 태극기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부끼는 빛바랜 태극기를 보자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그들은 이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견뎌내며 싸워왔을까.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편안하게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나는 삼일공원을 빠져나와 느릿느릿 산책을 시작했다. 요 근래에 빠르게만 걷다 보니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시간이 부족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따스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청주의 오후.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 지금 내게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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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814.JPG 수암골 벽화마을임을 알려주는 수암골이라는 세 글자.



한참 우암산을 걸어 올라가다 근처에 수암골이라는 이름의 벽화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매일 보아온 둔탁한 색감의 아스팔트 건물이 아닌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채워진 벽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걷던 방향을 바꿔 수암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암산에서 수암골로 내려가는 방향부터 벽화마을임을 나타내는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어서 내 자신의 방향감각에 뿌듯해지려는 찰나, 더위가 나를 엄습해왔다. 나무 덕분에 그늘진 곳이 많아 걸어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덥지만은 않았던 우암산길과 달리 수암골길은 직사광선 그 자체였다. 옷을 얇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벽화는 예뻤지만 더위 때문에 더 걷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야겠다 생각하고 나무 사이에 숨겨진, 마치 비밀의 화원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카페에 들어섰다. 시원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메뉴판에 있는 빙수 사진이 식욕을 자극해서 빙수를 먹기로 하고 치즈 빙수를 시켰다. 양이 너무 많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1인 빙수 메뉴가 있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 빙수를 먹는데, 엇 이 빙수 예상외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이나 맛있었다. 빙수를 먹으니 더위는 어느새 한풀 꺾이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다시 움직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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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817.JPG 골목 틈 사이사이 벽화들이 촘촘히 그려져있었다.
IMG_0820.JPG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장소일지도 모를 수암골의 골목.



수암골은 벽화뿐만 아니라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각광받아온 곳이었나 보다. 수암골 곳곳에 드라마가 촬영되었음을 알리는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제빵왕 김탁구>라는 인기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는데, 높은 시청률 때문이었을까. 아예 대놓고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홍보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수암골의 길가는 관광을 온 사람들로 약간의 북적임이 있었다. 북적임이 싫지는 않지만, 혼자 걷기의 묘미는 그 무엇보다 한적함에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큰 길가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골목길 사이사이에 이름 모를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이 골목을 혼자 걷고 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연인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꼼꼼히 그림들을 살피며 때로는 벽화 앞에서 연인과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그렇게 걸었겠지. 누군가를 마음 깊이 연모했던 순간의 내가 그의 손을 잡으며 어느 도시의 벽화 앞을 걸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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