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영화관 - 마지막 이야기 (2)
“오지필름과 함께했던 ‘다큐싶다’ 프로그램도 인상적인데요. 어떻게 오지필름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0년쯤부터 국도 바깥의 프로그램들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전에는 국도 안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에 대한 관심이 주였는데, 관심이 바깥으로 확장된 거죠. 외부 프로그래머 활동들을 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고요. 외부 활동들을 하다 보니 영화제 같은 걸 하나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할 거면 부산에 없는 영화제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부산에서 진행하지 않는 영화제가 뭐가 있나 생각해보니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없더라고요. 그런 생각들을 안고 있던 찰나에 국도에 영화를 보러 자주 오는 오지필름 멤버들과 친해져서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어요. 오지필름 멤버들은 영화제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상영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래서 그게 잘 맞물려서 ‘다큐싶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오지필름과 함께 해나가게 되었죠. 저에게 있어서 ‘다큐싶다’가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 같은 의미를 지닌다면, 오지필름에게 있어서는 관객들에게 덜 알려진 좋은 영화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창구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다큐싶다’를 통해 관객은 더 폭넓은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나고,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도 관객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생기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도의 마지막을 담은 영화 <라스트 씬>을 오지필름과 함께 만들기도 했잖아요. <라스트 씬>이 만들어진 이유도 궁금해요.”
“처음부터 국도의 마지막을 담기 위해 만든 건 아니었어요. 사실, <라스트 씬>은 2016년에 국도 오픈 10주년을 맞아서 관객들에게 국도의 10년을 담은 영상물을 보여주고 싶어서 오지필름과 함께 국도의 모습들을 찍기로 하고 시작된 작품이었어요. 국도가 남포동에 있던 시절, 마지막 상영일에 제가 디지털카메라로 국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네이버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그 글 제목이 <라스트 씬>이었어요. 모든 시작은 다른 끝으로부터라는 내용을 담아 글을 올렸죠. 남포동 시절은 비록 저물었지만, 대연동으로 옮겨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었죠. 아무튼 그런 취지로 2016년부터 영상을 계속 촬영해왔어요. 그런데 꽤 긴 시간 있어왔던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 재계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왔고, 국도의 영업을 종료해야 하는 날이 와버린 거예요. 이제까지 촬영한 것들과 추가로 한 달 정도 더 촬영한 것들을 모아 영업을 종료하는 마지막 날의 상영을 <라스트 씬>으로 하기로 했죠. 사실 마음 같아서는 영업을 종료하는 날까지 관객에게 국도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기도 했어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기도 했고,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갑자기 많은 관객들이 몰려드는 그런 풍경은 싫었거든요. 항상 한결 같이 국도가 관객을 위해 자리를 지킨 것처럼, 관객도 응답해 자주 찾아와 줬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한동안 뜸하다가, 마지막이니까 공간에 방문하는 그런 풍경들을 국도 외에도 무수히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그의 말이 충분히 수긍이 됐다. 존재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라스트 씬>에서도 나오듯이 그는 항상 국도가 공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왔다. 예술영화관은 왜 버텨야만 하는가. 버티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일까.
“<라스트 씬> 개봉과 함께 전국 독립예술영화관 투어인 ‘라스트 씬 – 무브무브’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전국의 작은 영화관들을 돌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라스트 씬>은 극장을 다시 오픈하면, 개관작으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작품이어서 이 영화를 가지고 앞으로의 극장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극장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고민해보자는 의미로 각 지역의 작은 영화관들을 돌면서 행사를 진행하게 됐어요. 행사를 진행하면서 만난 공간에 대한 느낌들은 그때그때 다 달랐어요. 극장들이 각각 처해있는 상황이 전부 다 달랐으니까요. 어느 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이었고, 또 어느 곳은 국도만큼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극장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라스트 씬 – 무브무브’ 행사 때보다 현재의 극장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해졌다. 팬데믹의 도래로 전체적인 관객수가 줄어들어 대형 프랜차이즈도 극장 체인들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인데, 예술영화관은 오죽할까 싶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음 질문은 밝은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이제까지 정말 궁금했다. 국도에서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작품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국도에서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는 무엇인가요?”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작품은 <소중한 날의 꿈>이에요. <소중한 날의 꿈>을 6개월간 장기 상영했었어요. 장기 상영 한만큼 <소중한 날의 꿈>의 총 관객 중 10%가 국도 관객 일만큼 많은 관객이 들었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봉의 형태나 예술영화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지라, 감독님도 고마워하며 국도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시곤 했어요.”
나도 국도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었다. 보고 너무 좋아서 주변에 한창 추천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국도에 갈 때면 항상 상영관 입구에 붙어있던 <소중한 날의 꿈> 포스터도 떠오른다. 장기 상영을 한 국도에게도, 작품을 만든 감독님도, 관람한 관객들에게도 제목처럼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GV도 정말 많이 진행되어서, 국도를 떠올리면 GV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인상적인 GV의 기억이 있다면 어떤 영화의 GV가 있을까요?”
“기억에 남는 GV는 워낙 많아서 딱 집어서 꼽긴 힘들고요. 국도가 GV로 유명해지면서 배우나 감독들이 항상 먼저 오고 싶어 하던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관객들에게 독립영화를 자주 접할 수 있게 하고,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캐스팅이나 만듦새가 상업영화에 비하면 부족한 면들도 있지만, GV를 통해 멀게만 느끼던 독립영화와 가까워지고 자주 보게 되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GV가 감독이나 배우들의 현재 상영작을 넘어서 과거의 작품도 찾아보게 되고, 미래에 만들어질 작품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했어요. GV는 그러한 순환적인 환경을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해요. GV를 통한 직접적인 관객의 피드백을 통해 감독이나 배우들도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기도 하고요.”
국도 GV는 최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되곤 했다. 초반에 국도 GV를 갔을 때 공책을 들고 가서 메모를 하기도 했었던 게 떠오른다. 그 당시만 해도 휴대폰 녹음 음질이 조악했던 시절이라 공책에 메모를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국도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GV와 GV가 끝난 후 감독님과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던 순간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자 선명히 머릿속을 스친다.
“영화의 도시로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산 지역에는 현재 민간 독립예술영화관이 없는 상태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팬데믹 시대를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극장의 의미에 대해 다시 되새기게 되네요. 이제는 극장을 한다면 민간으로는 힘든 시대라 생각해요. 만약 민간으로 한다 하더라도 개인이 아닌, 조직적인 활동으로써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협동조합의 형태처럼요. 개인이 하는 민간의 형태로 극장이 만들어지기에는 쉽지 않은 시대라고 봐요.”
“위의 질문과 맞닿아 있는데요. ‘씨네포크’라는 이름의 부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설립 추진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현재 ‘씨네포크’가 하고 있는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국도에 있을 때부터 진행 해왔던 ‘이음 영화제’를 현재 씨네포크에서도 하고 있어요. 관객들은 언제 공간으로 만날 수 있는지 만을 초점에 두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씨네포크가 하는 일은 공간으로써의 극장을 만들어나가는 활동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나눌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 이야기들도 중요시 여기고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이러한 부분들을 같이 해나간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지만, 동시에 해나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동시에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를 보며 나는 그라면 분명히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었다. 영화와 극장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그의 인생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나요?”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들을 가장 좋아해요. 짐 자무쉬의 영화를 통해 지루함의 미학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짐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 모든 장면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의미가 없어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반대로 의미가 있다고 뒤집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짐 자무쉬의 영화가 좋아요. 그리고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과거가 없는 남자>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도 좋아해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처음 봤을 때 “세상에 이런 영화도 다 있구나.” 싶어서 푹 빠졌어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는 <레닌 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모세를 만나다>, <토탈 발라라이카 쇼> 로 구성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그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서 육학년님께 부탁해 해외직구로 DVD 세트를 사기도 했었어요.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 작품은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매력적이어서 좋아해요.”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 그의 대답이 더 반갑게 다가왔다. 그리고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마치 인생사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가 없이 느껴지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특별해지곤 하니까. 어쩌면 이제까지 내가 진행해온 ‘내가 사랑한 영화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해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내가 가장 사랑한 공간인 국도로 담을 수 있다는 게 행운으로 다가온다. 팬데믹 이전의 극장과 팬데믹 시대의 극장의 이야기를 담는 나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결코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믿는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