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ecord - 마산 (2)
바람은 차지만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해서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졸았다. 잠시 졸고 나니 내릴 때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동서 레코드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지도 앱을 켰는데, 켜기가 무색하게 정류장 근처에 바로 동서 레코드가 있었다. 동서 레코드라고 적힌 파란 간판이 코앞에 보여서 머쓱해진 나는 지도 앱을 곧장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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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안쪽에서 친구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장님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들어가자마자 테이프에 바로 시선이 고정된 나를 보며, 찾는 게 있냐길래 딱히 찾는 건 없고 일단 살펴보고 고를 계획이라고 했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동서 레코드에는 내 생각보다 테이프가 많았다. 사장님 말로는 여러 지역에서 테이프를 사러 많이 온다고 했다. 와서 26만 원 치 테이프를 사간 사람도 있다고. 한 번에 26만 원치면 얼마나 많은 테이프를 사간 걸까. 그가 사간 테이프들이 어떤 것들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테이프가 남아있어서 행복함을 만끽하며 천천히 신중하게 테이프 렉을 훑었다. 한창 렉을 훑는데, 아 이럴 수가. 풍월 테이프가 있다.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인 풍월의 OST 테이프가 있었다! 장국영 팬인 내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보이자마자 바로 풍월 테이프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누가 와서 채가기라도 할세라. 풍월 테이프를 득템하고 나니 뭔가 보물이 더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서 훑었던 렉을 다시 한번 더 훑었다. 두 번째로 훑자 모베터블루스 OST가 보인다. 이것 또한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꺼내 들었다.
살펴보다 보니 영화 음악 테이프가 꽤 많이 보여서 영화음악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노키오랑 아나스타샤가 있는데 원하면 사가겠다니까 단번에 오케이란다. 내가 모베터블루스를 샀다니까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왔다. 두 개 있다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친구에게 양도할 테지만 아쉽게도 두 개가 아니어서 모베터블루스는 양도하지 못할 것 같다. 나도 충분히 이 영화에 나오는 재즈음악을 좋아하니까. 고른 테이프들을 계산하기 위해 사장님에게 내미니, 눈앞에 두고도 못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테이프를 참 잘 고른다며 칭찬을 해주신다. 내가 고른 테이프들이 그만큼 값진 것들이라는 걸 인정받자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장님이 계산을 하실 동안 사장님과 친구분이 이야기를 나누던 안쪽 공간도 궁금해져서 혹시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셔서 안쪽도 둘러볼 수 있었다. 안쪽 공간에는 팝과 클래식 테이프들이 꽤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크게 끌리는 건 없어서 집어 들건 없었다. 혹시 내가 놓치는 게 있을까 봐 CD가 있는 부분까지 열심히 살폈지만 더 이상 인연이 될 만한 음반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오늘 산 테이프들이 전부 OST라는 게 신기하다. 사실 가요 코너에서도 마음을 잡아끄는 테이프가 여럿 보이긴 했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시기여서 충동구매는 자제하기로 했다. 다음에 또 마산에 오면 들르겠다고 인사하며 동서 레코드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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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동서 레코드에서 들었다가 다시 놓았던 테이프 중에 여명의 테이프가 아른거렸다. 그것 때문에라도 다음에 반드시 또 이곳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테이프와 내가 인연이 맞다면 그때도 그 자리 그대로 있겠지. 테이프와 CD 외에도 워크맨과 옛 전화기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동서 레코드. 테이프들을 디깅 하면서 사장님과 친구분이 미국 대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고 있자니, 마치 백 투 더 퓨처처럼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동서 레코드에서 테이프를 향하던 나의 눈은 90년대였고, 귀만이 2020년의 시간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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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레코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로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