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ecord - 마산 (1)
오랜만에 씨네아트 리좀에 영화를 보러 왔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 보고 싶었지만, 티켓팅을 실패해서 보지 못했던 작품인 <마틴 에덴>이 얼마 전 개봉해 한창 상영 중이라 주말에 상영시간을 맞추어 리좀이 위치한 마산 창동에 왔다. 영화는 기대만큼 좋았다. 점심 무렵에 영화를 보았던지라 상영관을 나서니 시간은 세시밖에 되지 않았다. 영화만 보고 바로 진주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근처에 위치한 길벗 레코드를 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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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어서 일까. 아니면 길벗 레코드가 위치한 곳이 창동예술촌이어서 일까. 주말의 창동예술촌에서는 거리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길벗 레코드로 향하는 길목에 버스킹과 플리마켓, 거리 음식들이 제각기 다른 사운드를 내뿜으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순간적으로 나도 그 사운드 속에 섞여 들어갈 뻔했지만, 우선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행사 구경을 패스하고 길벗 레코드로 걸었다.
이윽고 도착한 길벗 레코드는 잠시 외출 중이라는 메모가 연락처와 함께 붙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너무도 당황한 나는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외관 사진을 찍으며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다려도 안 오면 전화를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길벗 레코드의 입구에는 악보들이 옹기종기 걸려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백 원을 주고 좋아하던 가수의 악보를 하나씩 손에 쥐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깥에서 한창 아직 보지 못한 내부를 궁금해하며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전화를 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외관 사진을 찍고 나니 사장님이 때맞춰 온 것이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방금 막 왔어요.”
내 말에 다행이라며 사장님은 경쾌한 몸짓으로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어 문을 열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린 문안의 세상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작고 아담했다. 밖에서 볼 때는 이렇게 가게가 조그만 줄은 몰랐는데. 나는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입구 쪽에 위치한 테이프 렉부터 바로 훑었다.
“테이프가 많이 빠져서 살게 별로 없을 거 에요.”
사장님의 말대로 테이프 렉에는 소량의 테이프만 꽂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양이어도 살게 하나쯤은 있을 거란 생각으로 꼼꼼하게 테이프를 요리조리 꺼내어 보고 렉들을 살폈다. 꼼꼼하게 살핀 덕분에 강타 2집과 2003년 SMTOWN 겨울 앨범을 발견했다. 내가 또 누군가. 에쵸티팬이 아니던가. CD로는 이미 소장하고 있지만, 테이프로는 없는 것들이기에 사야겠다 싶어서 냉큼 집어 들었다. 테이프 스캔은 끝났기에 CD코너에서는 살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보는데, DVD와 VCD 코너 위에 낯익은 얼굴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내 사랑 장국영이었다. 장국영 포스터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사장님에게 장국영을 좋아하시냐고 물었다.
“포스터 붙인 지 20년 정도 됐는데, 이제 더 이상 구할 수도 없어서 떼질 못하고 있어요.”
구할 수가 없어서 떼지 못한다는 사장님의 대답이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팬이라는 짧은 대답보다 더 강렬하게 와 닿기도 하고. 긴 시간 붙어있던 포스터 치고는 상태도 무척이나 좋아서, 열심히 오랜 시간 포스터를 관리해온 사장님의 애정이 느껴졌다. CD코너는 최신 앨범 위주라 아쉽게도 살만한 게 없었다. 장국영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만큼 장국영의 CD나 테이프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니다, 만약 있었어도 먼저 온 사람이 채갔겠지. 여전히 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테이프를 계산하면서 사장님께 길벗 레코드라고 이름을 짓게 된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길옆에 있어서 오며 가며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 남편이 지은 거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이름처럼 길벗 레코드는 37년이라는 시간 동안 창동 거리를 지켜왔다. 그 시간 동안 창동은 번화와 내리막을 롤러코스터처럼 겪어왔다. 한때 창동은 마산에서 가장 북적이던 동네 중 하나였으니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창동, 그리고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풍경들을 상상해본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 든다. 훈훈함을 안고 길벗 레코드를 나와 어시장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왁자한 소음이 한데 뒤엉켜 후각과 청각을 한껏 자극했다. 시끌벅적한 주말의 창동에서 길벗 레코드만이 유일하게 조용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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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레코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14
055-243-4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