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음악사

On the Record - 진주 (2)

by 석류


대도음악사. 복권과 담배도 판매해서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유난히 추운 가을 오후였다. 볼일이 있지 않고서야 당최 갈 일이 없는 동네인 신안동을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대도음악사. 옛날에는 대도음악사라는 간판이 아닌, 대도레코드사 였는데 언제부턴가 이름이 음악사로 바뀌었다. 이름은 살짝 바뀌었지만, 신기하게도 간판의 색깔은 레코드사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파란색이어서 마치 바뀌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학창 시절 등교를 위해 시내버스를 타면 항상 대도음악사를 지나가곤 했다. 대도음악사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해 길 건너편 대도음악사 간판을 바라보자 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학교로 향하는 길이 어서일까. 마치 수업을 빼먹고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러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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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음악사에는 테이프도 있지만, 오래된 CD도 많다. 재미있는 점은 클래식 CD와 테이프가 꽤 많다는 점이다.



대도음악사에 들어서자 창가 쪽에 설치된 티비를 보는 아저씨 몇몇이 눈에 띄었다. 복권을 사러 왔다가 심심해서 티비를 보고 있는 걸까. 티비에서는 일일 연속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일 연속극 특유의 오글오글한 멘트들이 귓가를 간지럽히고, 나는 그런 멘트들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테이프가 모여있는 테이프 코너로 숨어들었다. 테이프 렉에는 가요부터 시작해 팝송, 클래식, 트로트까지 장르별로 각양각색의 테이프들이 언젠가 찾아올 주인을 기다리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큰 매장 규모만큼 많은 테이프들이 남아있었다. 사장님 말로는 테이프를 사러 꽤 많은 사람들이 들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테이프 렉이 장르별로 크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군데군데 빈자리들이 보였다. 아마, 빈자리는 누군가가 나처럼 테이프를 뒤적이다 발견한 노다지의 흔적일 테다. 한 발 늦은 방문을 한 나는 빈자리에 꽂혀있던 테이프들이 어떤 테이프인지 알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남은 테이프 중에 나와 운명의 짝이 될 테이프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테이프에 적힌 가수명과 곡명을 훑었다.



클래식 코너에 김진표 테이프가 깨알 같이 꽂혀있었다. 김진표 팬들이 대도음악사에 온다면 클래식 코너를 살펴보길.



팝송과 클래식이 있는 코너를 보다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념 음반이라고 적힌 테이프를 발견했다. 실린 노래 중에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었지만,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하고 올림픽은 스포츠 덕후인 내게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최고의 빅 이벤트와도 같은 것이어서 망설임 없이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또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보는데, 펠리치타라고 적힌 테이프가 보였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어 원어연극을 할 때 불렀던 노래 중에 펠리치타가 있었는데, 혹시 그 노래가 실린 테이프인가 싶어서 테이프를 살펴보니 칸초네라고 되어있다. 이탈리아 노래를 칸초네라고 부르니, 내가 생각하는 그 펠리치타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맞는지는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해 들어봐야 알겠지만. 만약 맞다면 다시 또 방문해서 사야겠다. 가요도 팝송도 아닌 칸초네기에 아무리 득템을 노리는 사람들이어도 금방 팔리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가요 코너에서 낯익은 이름들을 많이 발견했다. 나는 여기서 클릭비 테이프를 득템 하는 행운을 누렸다.



펠리치타 이후로는 딱히 아는 음반을 발견하지 못해서 팝과 클래식 코너를 벗어나 가요 코너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요 코너에서 추억의 이름 최창민을 보고 반가움에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세대들은 모르는 이름이겠지. 90년대 후반 등장한 최창민은 귀여운 외모로 솔로 아이돌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지금 생각하면 원조 씹덕상이 아니었나 싶다. 테이프에 최창민 얼굴이 박혀있었다면 샀을 텐데 아쉽게도 최창민 사진이 박혀있지 않는 테이프여서 구입은 보류했다. 속지에 최창민 사진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표지를 원했기에 최창민과의 조우는 짧지만 강렬한 반가움으로 끝났다. 가요 코너에서 박진영, 디제이 디오씨, 컨츄리 꼬꼬 등등 꽤 많은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했지만 구입 뽐뿌가 오는 테이프가 없어서 올림픽 테이프만 사들고 가야 하나 했는데, 클릭비를 발견했다! 보는 순간 느꼈다. 아, 이건 꼭 사야 해라고. 백전 무패가 실린 클릭비 테이프를 손에 쥔 순간 한창 이 노래를 반복 재생해 듣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조차도 싫었던 시기, 이 노래 가사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매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노래 가사를 희망처럼 붙잡으며 힘든 시기에서 나는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클릭비 테이프 옆자리는 팔려서 텅 비어있었지만, 클릭비 테이프는 남아있다는 게 행운같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그 옆에 있던 테이프가 노다지였겠지만, 내게는 클릭비 테이프가 노다지로 다가왔으니까. 나는 양손에 올림픽 테이프와 클릭비 테이프를 쥐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서는 사장님이 간헐적으로 복권과 담배를 구입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도레코드사에서 대도음악사로 바뀐 이유가 궁금했지만, 하필이면 손님이 계속 오고 있어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바쁜데 번거롭게 하기는 싫은 마음에 재빨리 계산을 하고 대도음악사를 나왔다.



IMG_21331.jpg 대도음악사에서 구입한 클릭비 3집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념음반.



대도음악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더니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공책을 용돈기입장처럼 활용해 부모님께 받은 돈과 쓴 돈에 대해 적고 있었다. 테이프처럼 용돈기입장도 어느새 오래 전의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스마트폰이 워낙 발달한 시대라 요즘에는 이렇게 직접 손으로 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플을 썼으면 썼지. 아날로그의 대명사인 테이프를 사고 나와 수기로 용돈기입장을 쓰는 사람을 보니 지금이 2020년이 아닌 1999년처럼 느껴진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아날로그 세상에 남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대도음악사

경남 진주시 진양호로 334

055-745-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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