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가게들 - 진주 (2)
다양한 메뉴만큼이나 음악도 다양하다. 많은 LP들이 다원의 한 편에 꽂혀 있는데, 그 LP중 하나를 골라 턴테이블에 올려두고 그 날의 음악을 튼다. 공간에 흐르는 음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그 순간의 공기와 맞지 않으면 틀지 않는다. 매일 그 날의 분위기나 온도, 습도등을 보고 선곡할 LP를 고른다. 종종 음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단호하게 “저희는 음악을 틀어드리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 음악이 다원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의 경우는 있다. 신청한 음악이 다원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싶을 때다.
사이폰 커피, LP를 비롯해 다원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북토크와 라이브 공연등의 행사들이다. 나는 다원에서 때로는 관객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잠시 몸담았던 밴드의 일원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따뜻한 불빛의 조명이 나를 비추던 매혹적이었던 순간이.
그는 다원은 이미 예전부터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곳이었다고 말했다. 연주회를 하거나 시인들이 시를 발표하고 낭독하는 행사들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사들이 시간이 흘러 북토크, 라이브 공연등의 소규모 공연의 모습으로 발전되었다. 이제까지 다원에서 이루어진 행사들만 해도 200회 가량은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문화살롱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으로 그치는 게 아닌,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일들을 도모할 수 있는 ‘마당’ 같은 곳을 만들어주는 게 공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다원에서 정말 많은 손님들을 마주했겠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기억에 남는 손님에 대해 묻자 그는 잠시 기억에 잠기더니 인상깊었던 세 사람에 대해 말해주었다.
첫 번째로는 사이폰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인데, 무려 40년간 다원의 단골이다. 다원을 처음 오픈한 날부터 왔다는 단골 손님은 집이 가까워서 지금도 자주 오며가며 들르곤 한다고. 두 번째로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이 다원을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자신의 어머니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다원에 오더니 깜짝 놀란 게 아닌가. 청년의 아버지와 다원에서 선을 보고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원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원으로 오라고 해서 온 가족이 다원에 모였다. 세대를 뛰어넘어 다원을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지막으로는 매년 같은 날 와서 울던 청년이 있는데, 아마 다원에서 애인과 이별했는지 매년 같은 날에 와서 울었다고 한다. 다원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이별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같은 날 와서 그 날을 추억하며 우는 청년이라니. 마치 영화 <중경삼림>속의 금성무가 연기한 하지무가 연상되었다.
그는 다원을 운영하며 가장 좋았던 점으로 시간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흠뻑 느꼈을 때라고 했다. 다원이 가진 긴 역사 때문에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지만 보람으로 다가왔다고. 40대에 접어든 다원을 보며 단순한 공간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고 한다.
“다원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호나 문화가 바뀌면서, ‘더 이상 다원이 사랑받지 못하는 거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 올 때가 있어요. 다원의 효용이 끝난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을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오래된 카페이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면서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것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기에, 전통을 지키며 변화해야 한다는 게 큰 과제처럼 항상 남아있죠.”
전통을 지키며 변화하기란 쉽지 않지만, 다원이라면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다원은 공간의 특색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타이틀은 다원에게 있어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면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건 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박수 받을 때 떠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데 무대 위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요. 같이 나이를 먹는 친구 가게들이 있다면 서로 고민도 나누고, 연대도 하고, 재미있는 행사들도 더 많이 만들고 그럴 수도 있을 텐데 홀로 남아있으니 아쉽기도 하고요.”
함께 할 수 있는 동년배의 카페들이 없어서 더 재미있는 일을 도모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다원이 단단하게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카페들도 오랜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는지.
“1982년 오픈 후 40년째를 맞이했습니다. 마흔이 된 다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다원을 소개하는 말을 적을 때 쓰는 게 있어요. ‘진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간, 하지만 가장 젊은 공간.’ 이라고요. 재미난 일들을 다원에서 많이 시도하기도 했으니까요. 젊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도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다원이 사람이라면 “더 이상 멋있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하루 재밌게 놀다가 해지면 집으로 돌아가자.”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부담감이나 의무감 같은 거를 많이 지워준 것 같아서요.”
부담이나 의무감이 아예 없기는 힘들지만, 다원이 앞으로의 시간들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내려놓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하나의 커뮤니티 허브로서 몇 명이라도 다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원을 내어줘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손님들이 다원을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나요?”
“약간은 은밀하고 미스테리한 공간으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다원이 지하다보니 창이 없어서 들어오면 몇 시간은 금방 흘러 가버리는 그런 곳이거든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과 대면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원을 설명할 때 “참 이상하지.” 라는 말이 따라 붙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주는 은밀하고도 미스테리한 공간, 다원. 언제나 다원에 오면 시간이 삭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힘든 날에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이 공간에서 앞으로도 계속 시간을 잊는 나날들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