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미스테리한 장소, 다원 上

나의 오래된 가게들 - 진주 (1)

by 석류
IMG_22971.jpg 다원의 입구.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점이 있다. 내게 있어서 다원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오래된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그런 장소. 오늘 다원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을 품으며 천천히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1982년 진주에 오픈한 다원은 사전적인 의미로 ‘티 가든’(Tea garde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정원이라는 뜻인데, 뜻이 정말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아늑한 정원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오픈 후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여러 차례 다원의 대표가 바뀌었다. 현재는 9번째 다원장인 배길효님이 운영 중이다. 배길효님은 2006년부터 다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8번째로 다원을 운영하던 다원장이 다원의 운영을 그만두게 되어 다원을 이어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8대 다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사람이면 다원을 맡겨도 괜찮겠다.’ 라는 판단이 든 다원장이 그에게 다원의 운영을 맡겼고 그렇게 그는 9번째 다원장이 되었다.



이제까지 다원을 운영한 다원장들은 짧으면 2년 정도의 운영을 했고, 길게 한 사람은 5년가량 운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다원장인 배길효님은 가장 오래 다원을 운영하며 다원의 청년기를 함께 보내고 있다.


IMG_2334.JPG 다원의 바 자리. 예전에는 이곳에 사이폰이 주루룩 있었다고 한다.


그가 다원과 처음 만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가 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다원은 진주의 핫플레이스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LP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그 시대는 커피숍과 다방의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려면 커피숍이나 다방에서 만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다원은 그러한 커피숍과 다방 사이에서도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공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본격적으로 그는 다원의 분위기를 즐기게 되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다원의 이미지는 그가 계속 다원에 걸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예술가들도 자주 방문하고 어우러지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문득 다원은 예전에도 지하에 위치했는지 궁금해졌다. 처음부터 계속 쭉 같은 자리에 있었냐고 물었더니, 오픈 때부터 있던 자리를 옮기지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벽돌, 나무, 천장을 비롯한 인테리어 전반들이 처음 생겼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도. 다원을 오픈한 1대 다원장은 원래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가게 인테리어를 해주다가 본인의 가게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벽돌과 원목을 주재료로 삼아 다원을 만들었다. 만드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운영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당시 다원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이에게 다원을 넘겨주었고, 매니저는 2대 다원장이 되었다.


처음에 만들 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가 몸소 느껴지는 다원의 인테리어는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견고하고 튼튼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시간은 다원이라는 공간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IMG_22991.jpg 다원의 간판. 얼굴 모양의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내부 인테리어를 비롯해 들어오는 입구에 걸려있는 간판인 얼굴 모양의 조형물도 인상적인데, 어떻게 그 조형물을 간판 대신 대체 하게 되었냐고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간판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그가 다원을 인수받았던 당시 쇠로 된 구조물이 다원 입구에 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다보니 쇠가 부식이 돼서 위험해보였다. 그래서 철거를 해야만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 구조물은 간판과 같이 달려있던 거라서 간판도 떼내야만 했다. 떼어내고 나니 간판이 사라져 없었는데, 그와 친한 조각가 강선녀가 전시회 때 썼던 작품을 활용해 간판의 느낌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선물했다. 흥미로운 점은 강선녀의 전시회의 작품들이 진주 곳곳에 흩어져있다는 것이다. 다원에서는 간판이 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벽이 되기도 하는 형태로 말이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사이폰 커피를 하는 곳이 많이 사라졌는데, 다원은 여전히 오랜 시간을 사이폰 커피와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다원을 생각하면 사이폰 커피가 떠오를 정도로 하나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다원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핸드 드립이 없어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사이폰이 가장 일반적이었기에 커피숍이나 다방에서는 전부 사이폰 방식을 사용했다.



IMG_2341.JPG 사이폰 커피를 만드는 모습.
IMG_2343.JPG 완성된 모습의 사이폰 커피.



지금의 다원은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초창기만 해도 커피를 중심으로 하는 ‘사이폰 바’였다. 사이폰만 열대 정도가 바위에 주루룩 올려져 있고,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그 사이폰들을 이용해 계속 커피를 내려나가는 형태였다. 지금은 사이폰을 하는 곳이 드물어서인지 다원의 사이폰 커피를 볼 때면 유니크하다는 느낌이 든다.



“음료라는 게 손님들의 주문의 경향을 따라 가기도 하고, 그게 또 시대를 반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떠한 메뉴들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하는 거죠. 사이폰을 제외하고 시그니처라고 한다면 다원표 칵테일이 아닐까 싶어요. 손님들이 주문도 많이 하시고, 드시고 난 후에는 ‘이 칵테일들이 다원의 특색이다.’라고 말해주시기도 해요. ‘언더 그라운드’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있는데요. 다원이 지하에 있기도 해서, 커피와 와인을 베이스로 해서 이름을 붙이고 만든 칵테일이에요. 사실, ‘언더 그라운드’를 예로 들었지만 그때그때 시그니처는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다른 칵테일이나 뱅쇼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손님들이 사랑해주시는 메뉴들이야말로 바로 시그니처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의 말대로 시그니처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다원에는 커피 외에도 드링크 메뉴가 무척 많기 때문이다. 메뉴판에는 맥주, 칵테일, 와인 등의 다양한 메뉴가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메뉴를 하게 된 이유를 그는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손님들이 원하는 걸 다 만들고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이처럼 메뉴가 다양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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