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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an 21. 2024

제리와 아사미 下

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아사미는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글을 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사미가 제리를 가리키며 제리도 글을 쓴다고 했다. 제리가 흥미로워하며 자신의 글을 업로드하는 플랫폼 같은 걸 휴대폰으로 보여주었는데 해외 플랫폼이라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신기했다. 해외에서,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서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함도 신기함이지만, 나는 두 사람의 사이가 궁금했다. 둘이 매우 다정해 보였으니까. 둘이 사귀냐고 물어봤더니, 아사미가 격렬하게 손사래를 쳤다. 학교 친구라고 했다. 제리가 어느 정도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걸로 봐서 싱가폴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온 교환 학생인 것 같았다. 둘은 친구라고 말했지만 같이 오사카로 여행을 올 정도면 보통사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일단 아사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사미는 나의 의심의 눈초리를 의식한 듯, 애인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없다고 답했다. 내 대답에 아사미는 기뻐하며 외국인을 만날 생각이 있냐고 했다. 나는 마음만 맞으면 국적은 상관없다고 말했고, 아사미는 제리는 어떠냐며 제리와 나를 엮었다. 갑자기 나와 엮여버린 제리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고, 아사미는 물들어올 때 노 젓는 듯이 제리와 내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여전히 제리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를 전환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두 사람이 마시고 있던 하이볼을 가리켰다. 여기 하이볼 맛이 괜찮냐고. 내 말에 제리는 여기 하이볼 진짜 괜찮다며, 나 보고도 맥주 말고 이제 하이볼로 갈아타라고 말했다.


 나는 남은 맥주를 마시고, 그들의 권유에 따라 하이볼을 시켰다. 사실 반신반의 하며 주문했는데, 하이볼이 정말 괜찮았다. 예전에 무작정 들어간 가게에서 정말 맛없는 하이볼을 먹었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혹시 여기도 그렇진 않을까 의심했는데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눈을 번쩍 뜨고 하이볼을 즐기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두 사람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한창 하이볼을 마시는데 아사미가 물었다. 혼자 여행을 온 거냐고. 나는 현지에 사는 친구와 함께 여행 중인데, 친구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대답했다. 시계를 보니 포키가 일을 끝마치려면 아직도 3시간이나 남았다.      


 아사미와 제리를 만나서 그나마 덜 심심하지만, 그들이 가고 나면 나는 혼자서 계속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차린 걸까. 아사미와 제리는 원래는 다른 데를 가려고 했는데, 여기에 더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나를 위해서 기꺼이 이곳에 더 있어준다는 사실이.      


 우리는 이야기와 함께 계속 건배하며 하이볼을 열심히 비웠다. 안주도 꽤나 시켰는데, 제리가 김치를 시킨 게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김치가 먹고 싶어서 시킨 건지 알았는데, 한국인인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시켰단다. 수줍게 웃으며 김치를 먹으라고 내 쪽으로 밀어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생각보다 김치가 상당히 맛있었다. 한국의 김치 맛에 뒤지지 않았다. 김치를 열심히 먹는 내 모습에 제리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     


 한참 동안 제리와 아사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덧 포키를 기다려야 할 시간도 한 시간만 남은 상태였다. 제리와 아사미는 더 있고 싶지만 이젠 숙소를 가야 할 것 같다며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제리가 술과 안주를 계산하는데, 당연히 자기네 들것만 계산한 줄 알았는데 내 것도 같이 계산을 했단다. 이제까지 먹은 건 다 계산했으니, 앞으로 먹을 것만 계산하면 된다고 말하며 남은 한 시간도 잘 버텨보라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뜻밖의 호의에 벙 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지갑에서 엔화를 꺼내 들었지만, 제리는 받지 않았다. 처음 본 사람인 내게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 꽤 많이도 먹었는데. 그래서 만만찮게 돈이 나왔을 터인데. 제리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루할 것 같던 한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이윽고 일을 마친 포키와 만났다. 포키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단하다며, 어디에 내놔도 굶어 죽지 않을 사람이라고 했다. 외국인에게 술을 얻어먹다니. 친화력이 장난 아니라고.      


 제리와 아사미와 함께 한 그날 니혼바시의 저녁은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들과 인스타그램으로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데, 아사미와 함께 제리의 나라인 싱가폴로 놀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아직은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팬데믹이 지나고 나면 꼭 지키고 싶다. 그 약속을 위해 제리와 아사미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우리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일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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