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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25. 2024

방어 下

기억의 단상 2020년 11월호

 

 그날도 그랬다. 하늘이 오빠, 레이 오빠, 얼룩말 언니까지. 오래 섬에 머무르는 나와 달리 그들은 떠나야 했고, 나는 그들을 보내기가 싫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마주 앉아 나누고 싶었다. 막연하기만 한 가지 말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게 튀김을 해줄 테니 일단 있어보라고 했다.    

  

 발목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차가운 바다에 발을 내디뎠다. 게 잡이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함께 동행한 게스트 한 명이 물에 발을 넣자마자 너무 춥다며 소리를 꽥꽥 질렀다. 게스트에게 조금만 지나고 나면 괜찮을 거라며, 천천히 온도에 익숙해지면 된다고 말하며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밀물일 때는 걸어서 건널 수 없던 바다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작은 개울가로 변해있었다. 개울을 건너면 썰물로 인해 드러난 모래 위로 작은 돌들이 박혀있었는데, 그 돌 밑에는 게들이 옹기종기 숨어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게 잡이를 통해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돌을 들면 게들이 게모임을 하고 있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라임을 맞추며 말을 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게스트가 깔깔 웃었다. 어쩌면 라임 때문에 그가 날 따라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 잡이 출발 전에 의기양양하게 왼손에는 통을 들고, 오른손에는 집게를 들고서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 게 잡을 사람을 모집한다고 말했었으니까.      


 마치 도박단을 불시 단속하는 듯한 근엄한 표정으로 돌을 들자 혼비백산한 모양새의 게들이 다른 돌로 후다닥 도망갔다. 모두가 걸음이 빠를 수는 없는 법. 걸음이 느린 게가 집게에 붙잡혔다. 집게에는 집게로 대해야 인지상정. 맨손으로 게를 잡으려 하면 손을 다치니 집게는 필수다.      


 잡힌 게를 들고 온 통에 옮겨 담으며 게스트에게 게 잡는 팁들을 전수했더니, 처음에는 허둥대느라 게를 다 놓쳤는데 한 번 잡기 시작하더니 필이 왔는지 보이는 돌마다 다 한 번씩 들어보자고 나에게 역제안을 했다. 그러나 모든 돌에 게가 다 있지는 않은 법이다. 돌 자체도 너무 꽉 박히거나 무거워서 들 수 없는 것도 있고. 어느 정도 게 잡이가 손에 익은 후에는 따로 떨어져서 잡기로 했다. 1인 1 집게와 통이 있으니 따로 떨어져서 해도 전혀 문제없을 테니까.     


*     


 절반쯤 통이 차고 나자 이제 그만 잡아야겠다 싶어서 그가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의 통 안에 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깜짝 놀랐다. 보이는 게를 전부 잡아버린 모양이다. 많이 잡은 건 칭찬해 줄 일이지만, 작은 게 들을 다 잡아버리면 아예 게들의 씨가 마르기 때문에 작은 애들은 다 놔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그는 게들을 놓아주기 시작했는데, 작은 게 들만 주로 잡은 것인지 놔주고 나니 통에는 남은 게 들이 별로 없었다. 너무 시무룩해 보여서 처음치고는 그래도 엄청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더니 시무룩함으로 굳은 얼굴이 조금은 풀렸다.      


 숙소로 돌아가자 그는 게 잡이에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는지 녹다운 상태로 꿀잠 스위치를 켰다. 나도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게 튀김을 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서 졸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았다. 잡아온 게 들을 부엌으로 가져가 소금으로 해감 하는 동안 바다는 썰물 상태를 마치고 밀물로 변화하고 있었다. 밀물과 함께 해가 지고 있었다.      


 부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해감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게를 튀겼다. 기름에 경쾌하게 게가 튀겨지는 소리가 게스트 하우스를 가득 울리고 몇몇 사람들이 신기한 듯 부엌에 게 튀김을 구경하러 드나들었다. 게는 오래 튀기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적당히 튀기고 바로 기름에서 빼내야 한다. 나는 익숙한 손길로 바삭하게 튀겨진 게를 키친 타월을 깔아놓은 그릇 위에 담아서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로 들고나갔다.  

    

 내가 게 튀김을 들고 등장하자 다들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얼룩말 언니는 처음에는 이거 정말 먹어도 되나 하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는데, 꽃게랑 같은 식감이라는 내 말에 용기를 내어 맛보더니 생각보다 바삭바삭하고 맛있다는 걸 깨닫고는 계속 젓가락을 들었다. 하늘이 오빠와 레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게만 먹으면 아쉬우니 한라산도 곁들였는데, 거기에는 나의 빅픽처가 숨어있었다. 게 튀김과 한라산이면 백 프로 연박이다. 아주 환상적인 조합이라 육지로 돌아가기 싫은 기분을 느끼게 될 테니까.     


“이제 비행기 표 취소 할 때도 안 됐어요?”     


 장난스럽게 건넨 나의 말에 하늘이 오빠와 레이 오빠는 자신들도 이미 한라산을 마시는 순간 포기하고 취소했다며 얼른 취소하라며 한술 더 떴다. 잠시 머뭇거리던 얼룩말 언니는 에라 모르겠다 싶은 표정으로 결국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바다 위로 퍼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테라스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게 튀김에 한라산을 곁들이던 따뜻한 겨울 저녁. 겨울이었음에도 별로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건 함께 했던 그들이 따스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 겨울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게 내겐 참 큰 행운이었다. 그들과 다시 완전체로 모여서, 우리 처음 만났던 그 섬에서처럼 게 튀김을 맛보는 순간이 또 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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