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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r 25. 2024

2023. 11. 15

2부 5화

 

 하차 분류를 하게 된 지도 어느덧 5일 차가 되었다. 며칠을 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아직도 모서리에 송장이 붙은 채로 오는 물건들을 눕혀서 실시간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붙잡아 송장번호를 매직으로 쓰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송장번호를 매직으로 쓰는 걸 ‘코딩’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하차 분류 병아리에 불과한 나에게 있어서 이 일은 거대한 미션과도 같이 느껴졌다. 코딩을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뒤에서 몰려오는 물건들에 밀려서 분류가 엉망이 되는 건 부지기수여서 일단은 코딩하기를 포기했는데, 고인물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일 한지 며칠이 됐는데 아직도 코딩을 못해! 그냥 물건 보내지 말고 적어야지!”     


 잔뜩 화를 내며 말하는 아저씨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아직 며칠밖에 안 된 나에게 코딩은 벅찬 일이다. 그는 하루 종일 나에게 계속 소리 지르며 화를 냈고, 그 때문에 당황해서 실수하지 않을 것도 실수하게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옆에서 윽박지르며 소리 지르면 당황하지 않는 게 이상하니까.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눈이 새빨개진 상태로 울면서 분류를 하면서,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우울감이 몰려왔다.      


 C사에서는 ‘분류의 신’이라는 호칭까지도 섭렵했던 나인데, 여기서는 이렇게 천대받다니. 내가 울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또한 서러웠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방관자처럼 느껴졌다.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머리가 아팠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픈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버텨야 할까. 이제 시작인데 암초를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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