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류 Jun 15. 2024

투이 언니들 (3)

기억의 단상 2020년 12월호

 

 친절한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 눈앞에 택시가 도착했고, 드디어 무더위에서 탈출이라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택시는 내 기대를 사뿐히 배반하고 시원한 에어컨 대신 열린 창문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여름마다 에어컨을 만든 윌리엄 캐리어를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로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나는 이 더운 나라에서의 앞으로의 여정이 심히 걱정되었지만, 뭐 어떻게든 헤쳐 나갈 구멍이 있겠거니 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게도 택시가 움직이자 생각보다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서 더위를 그나마 식힐 수 있었다.     


*     


 택시는 달리고, 또 달려서 나를 어느 골목 앞에 내려주었고 나는 이곳이 맞나 반신반의하며 언니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언니들에게 답장이 왔다. 골목 안으로 들어오라고. 골목 안으로 캐리어를 돌돌돌 끌며 들어가자 언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류!”     


 이게 얼마만일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언니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었다. 항상 언니들에게는 이국이었을 한국에서 마주하다가 반대로 나에게 이국인 베트남에서 언니들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언니들은 한국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까무잡잡해져 있었다. 햇빛에 보기 좋게 그을린 언니들의 얼굴을 보자 비로소 내가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흐엉 투이 언니는 간략하게 내가 찾아온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었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언니들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혹시나 까먹을 새라 탄 투이 언니가 올리브영에서 사다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캐리어에서 꺼내어 주고, 언니들의 선물로 준비해 간 것들도 주섬주섬 꺼내서 주었다.


 언니들은 뭘 이런 걸 다 챙겨 왔냐며 그냥 와도 된다고 마치 엄마 같은 말투로 말했지만, 내심 내가 자신들을 위해 무언가를 챙겨 왔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흐엉 투이 언니가 내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쌀국수라고 답했다. 흐엉 투이 언니는 한국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쌀국수가 아닌 다른 대답을 기대한 듯했지만 나는 이번 여정에서 질리도록 베트남 현지의 쌀국수를 먹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시 한번 흐엉 투이 언니가 정말 쌀국수가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굳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했다.     


“쌀국수 정말 좋아하는구나.”     


 흐엉 투이 언니는 나를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화답하듯 개구지게 씨익 웃어 보였다. 맛집으로 안내하겠다며 흐엉 투이 언니와 탄 투이 언니가 각자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나는 어디에 타야 하나 고민하다가 탄 투이 언니의 뒤에 타기로 했다.


 한국에서 우리가 만날 때는 주로 도보 위주였기에 오토바이를 타는 언니들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베트남에는 오토바이를 차보다 더 많이 탄다더니, 투이 언니들의 오토바이 실력은 내 예상보다 훨씬 능숙했다.  


 나는 탄 투이 언니 뒤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차도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 오토바이들이 내뿜는 뜨거운 엔진 소리가 온 거리를 메우는 걸 계속 듣고 있노라니 내 심장의 BPM이 덩달아 빨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빨라지는 BPM을 느끼며 탄 투이 언니에게 “언니 달려~”라고 외쳤더니 탄 투이 언니가 어깨를 작게 들썩이며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투이 언니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