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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너는 몰랐을 의미

기억의 단상 2021년 10월호

by 석류

이상하게도 너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뜻 없이 지나치고 말 행동들이 네가 하면 의미가 생긴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네가 숨을 쉬고 있다는 그 자체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네가 주었던 그 양말도 그랬다. 살면서 꽤 자주 양말 선물을 받았고, 그때마다 상대에게 고마움은 있었지만 딱히 의미를 부여해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준 그 양말 한 켤레는 달랐을까. 너는 나를 너무 몰랐는데.


한 여름에 신기에는 너무 더운 그 양말. 너는 내가 한 여름에도 긴 양말을 신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발목양말보다 긴 양말이 선물로 주기에는 무난했기에 그랬던 걸까.


네가 주었던 그 양말. 꽃무늬가 온통 수놓아진 그 양말. 어쩌면 내 하와이안과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며, 네가 골랐을지도 모르는 그 양말. 갈색의 크라프트 봉투에 고이 담겨있던 그 양말. 서랍장에서 보일 때마다 네 얼굴이 생각나서 아직 한 번도 신지 못한 그 양말.


그리고 너는 몰랐을 양말에 담긴 의미. ‘당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라는 의미를 가진 양말. 너는 모르고 주었을, 나만 알지도 모르는 의미를 곱씹으며 나는 너를 그리워하고 꿈에서 너를 만날 때마다 왜 하필 양말을 주었냐고 묻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너에게 의미를 담아 양말을 선물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네가 양말에 숨겨진 내 메시지를 간파할까봐 나는 두려워져 결국 선물하지 못하고 시간은 점점 더 흘러간다. 하와이안의 계절은 가고, 이제 정말 네가 준 양말을 신을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양말과 딱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지만, 나는 서랍장에서 양말을 꺼내지 않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만 한다. 그리고 너를 만나러 가는 날 이 양말을 신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영원히 너는 모를 의미를 담아 양말을 신고 나는 너를 만나러 그 계절을 저벅저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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