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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tasmo Jun 22. 2022

나의 해방촌

뒤돌아보는 나의 어린 시절

그림_홍지혜



나는 남산 밑 후암동에서 줄곧 자라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옆 동네인 해방촌에서 살며 해방촌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가파른 길을 오가는 차들

잘도 막혔고 많은 차들이 그 비탈길을 올라가고 내려갔다. 어렸던 나는 그 길을 늘 달려 내려갔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에는 중력의 힘이 강해서 다리가 저절로 빠르게 달려졌다. 그 시절의 나는 천천히 가는 법을 몰랐다.


난 가끔 연애를 했고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하고 데려다주겠다는 남자들에게 그냥 중간에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 골목을, 그 가파른 길을, 골목 입구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매일매일 꾸는 꿈을 메모해나갔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임에 나갔다. 매주 내가 말하는 꿈에는 늘 해방촌이 나왔다. 내가 사는 모든 곳은 해방촌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공간도 해방촌이었고 익숙하게 배치된 집들의 동네도 다 해방촌이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른 보금자리를 일구었는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 뛰어내려 갔던 그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회사를 다녔다. 나는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해방촌에서 먹고살고 일했다. 내 모든 공간 중에 해방촌이 아닌 곳이 없었다.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구절을 늘 생각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 무어지? 현실의 나는 이리도 가난한데 왜 마음까지 가난해야 하는 거지? 천국까지 가진 년, 놈들의 마음은 왜 가난한 건지 그 말을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냥 누군가 성경에 뜬구름 잡으려고 적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천국을 갖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난 늘 초라하고 초라하다. 어딜 가도 단단하게 묶인 밧줄을 확인한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겠어하고 다시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엄마는 하소연하는 나에게 ‘욕심 좀 내지 말고 살아!’라는 말을 하였다. 전화를 끊고 그 말이 귀에 울린다. 

욕심 좀 내지 마.

욕심 좀 내지 마.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왜 나에겐 욕심인 건지 화도 났지만 나 스스로에게 ‘그건 욕심이야!’ 소리쳤다.


난 마음이 가난하여 천국에 갈 예정이다. 천국이 진정한 천국일지 마음만 천국일지 알 수 없지만 나 같은 욕심쟁이를 받아준다면 그곳은 진정한 천국일 것이다. 그 천국은 나처럼 결실 없이 쓸쓸히 마음만 가난한 이들을 받아주는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 같은 이들로 넉넉히 채운 요란법석 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이기리 작가님의 <괜찮습니다>라는 시를 읽고 쓴 글입니다.

요즘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잊고 있었던 사건들을 다시금 자세히 돌아봅니다. 위로도 되고 그 안에 아파하는 나를 만나기도 합니다. 힘들지만 힘든 만큼 위로가 됩니다.


어느 작가님의 글과 사진을 참 좋아하는데, 그 안에는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솔직히 드러나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작가님의 글과 사진을 더더욱 자세히 보게 됩니다. 어느 날 그 작가님께 받은 편지 안에는 솔직하기까지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나의 결핍, 나의 자격지심, 아픔, 슬픔들을요. 쏟아내면 사람들이 도망가겠지?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조금 더 드러내고 나를 조금 더 안아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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