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간직하고 있는다는 것의 의미
명절기간동안 애프터 양을 보았다. 여운이 길게 남아 짧게라도 남겨보려고 한다. (스포주의)
애프터양은 백인남자와 흑인 아내가 중국계 딸을 입양하였다. 그리고 딸을 위해 양이란 안드로이드를 구입하여 4인가족의 행복한 하루하루를 산다. 아빠는 전통차를 파는데 잘 안되기도 하고 엄마가 바빠지기도 하지만 서로 탄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정이다. 그러다 갑자기 양이 고장이 났다. 양은 형제자매로 아이와 놀아주는 목적의 안드로이드로 중국인으로 고안된 로봇이다. 중국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공부해 딸에게 최고의 오빠이다.
부부는 아이의 뿌리를 잊지 않게해주는 목적으로 양을 구입했었다. 그러다 덥썩 고장이 나니 아이도 힘들어하고 엄마는 일이 너무 바빠지고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아빠는 양을 데리고 이곳저곳 전전하다 '양'의 핵심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양은 새 상품이 아니다. 본사가 아닌 차이나타운의 어떤 상점에서 보상을 해준다는 말만듣고 구입해왔다. 그 전에 다른 집에서 5일동안 있었다는 말만 듣고 구입했다.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니 일상의 순간들, 반짝이는 햇살과 나무, 찻잎이 빙빙도는 찻잔, 그들의 따뜻한 뒷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어떤 낯선 여자가 담겨있다. 그녀와 보낸 시간들이 담겨있다.
그녀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녀는 클론이라는 사실도 알게된다. 그들은 양의 기억을 조금씩 들여다보며 조금씩 그 속의 자신의 기억을 발견한다. 서로 나누었던 대화. 그들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답을 알수없는 질문에 서로 답을 해주던 잠깐의 기억. 그 기억들로 양을 다시 추억한다. 그 기억속에서 자신을 다시한번 본다. 양은 거울을 보며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기억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을거라 믿는 행동을 양도 한다. 거울을 볼때마다 희미하게 표정이 다르다. 그 순간의 알수없는 감정이 표정에 들어나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알수없는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신은 끝이 없는 것이 무섭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 이다. 미카의 엄마가 자신이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두려움이 든다는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은 끝이 있다고 프로그래밍 되어있기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의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나비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양도 나비표본을 수집한다. 아마도 나비처럼 한 사람의 생이 끝나도 계속해서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믿고있다는 것을 나비를 수집하는 것으로 소유하고 싶었던걸까?
마지막에 다다라서 미카의 아빠는 양의 또다른 기억을 발견한다. 첫번째 구입을 했을때의 기억. 그곳에서 오랜시간을 살면서 가족들의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거기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기억. 그리고 그녀의 클론이 지금 비밀친구로 지냈던 에이다라는 걸 알게된다. 영화에서 양의 존재는 인간보다 더 긴 시간을 살고 인간의 희노애락과 상실과 이별을 겪으며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영화의 끝에는 미카가 양의 방으로 가 작별인사를 한다. 그리고 거실에서 홀로 앉아있는 아빠와 앉아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노래한다. 양은 릴리슈슈의 모든 것 ost를 제일 좋아했고 에이다와의 특별한 추억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이 얼마나 인간을 아름답게 보고싶어하는지 그 욕망을 좀 더 알게되었다. 로봇마저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게 그려진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마음이 마구 뜨거워진다. 사랑해서 서로 상처주고 결국은 인생에서 혼자가 되며 이별하게 되는 과정들. 아픔과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을 참 아름답게
그려나간다.
차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차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는 미카의 아빠인 제이크의 무기력함이 영화 전반적으로 느껴진다. 전통차를 좋아하고 찻집을 운영하지만 지하에 덩그러니 위치한 찻집은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의 아내는 바빠서 양을 어떻게 했는지 고치는것에만 관심이 있다. 무기력하고 자신의 능력밖의 일들이지만 하나씩 해나가면서 기억속에서 자신을 만나듯 양의 기억을 추리한다. 그렇게 그도 그 퍼즐을 다 맞추고 마지막에서는 자신의 삶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영화를 보며 해가 반쯤 들어온 오후의 햇살같은 집의 편안함에 편안한 기분으로 영화를 계속 보게된다. 어쩌면 졸릴지도 모른다. 양의 기억도 나릇하고 자극적이지 않기에 더더욱 이 영화의 톤은 느릿하게 흘러간다. 큰 갈등없이 그저 존재하는 일상의 기억들이 담겨있다. 그렇지만 무겁지 않게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그리고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버거움에 대해서도 담고있다.
미래의 세계도 다르지 않고 그저 왜 존재하는지 질문하듯 그려있다. 그쯤되면 우리의 존재를 더 명확히 알것도 같은데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제시해주지 않고 그저 지금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다. 그냥 혼란스럽고 외로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ost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I wanna be 로 시작하는 가사들.
난 무엇이 되고싶을까? 훌쩍 어른에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할 것 같은 중년이 된 나는 무엇이 되고싶을까? 질문하게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