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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tasmo Jun 02. 2022

잃어버린 영혼

기다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림출처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 이지원 옮김 / 48쪽 / 18,000원 / 사계절



어느 날, 일곱 살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죽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어?” 당황한 저는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곧이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영혼이 뭐야?”



『잃어버린 영혼』은 차가운 겨울의 공원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산책을 하고 눈사람을 굴리고 눈썰매를 끕니다. 차갑지만 춥지만은 않은 풍경입니다. 하얀 벙어리장갑을 벗어주는 따뜻함도 있습니다. 온기를 나누기에 좋은 계절이지요. 곧이어, 어떤 남자가 영혼을 잃어버렸습니다. 현명한 의사의 처방대로 변두리 작은 집에서 영혼을 기다립니다. 색 없는 그의 공간은 조금씩 변하지만 여전히 색을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옆 장 아이의 모습은 어떤가요? 식당에서 어른들 사이에 혼자 앉아있기도 하고, 어른들의 흥겨운 자리도 이방인처럼 지나칩니다. 땅끝 바다까지 갔다가 기차를 타고 좁은 흙길을 걸어 작은 창문 앞에 도착합니다. 어두컴컴한 집 안을 바라보고 외칩니다. “드디어!”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장과 장 사이의 일들은 모르지만, 아이는 숨을 몰아쉬고 지쳤고 더럽고 할퀴어져 있습니다.



남자와 아이는 서로를 알아보고, 나란히 햇볕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자 집 안은 온기로 가득 찹니다. 책은 차가운 겨울 풍경에서 시작해 마지막은 따사로운 햇살로 가득합니다. 작은 연못, 두 개의 빨간 의자, 차를 마시기 좋은 탁자, 빨간 꽃을 피우는 풀,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햇살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남자는 기다리기만 했을 뿐인데 집을 생명력 가득한 공간으로 가꾸었습니다. 이는 남자가 가꾼 마음의 집이기도 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거름이 되어 색색의 꽃과 나무를 키워낸 거지요.



그럼 영혼은 무엇일까요? 어느 날 벗어 준 벙어리장갑일 수 있고, 남자의 어린 시절일 수 있고, 온기를 나눈 찰나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겁니다. 영혼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모든 것들에게 말을 겁니다. 지나가는 개미도,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도 아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모두 나이고 너이고 친구이지요. 저는 제 아이에게 영혼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저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몸이 자라면서 아이의 시간을 지우고 아이의 시선을 버리고, 어른의 옷을 입으며 어른처럼 바쁘게 빠르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혼은 알고 있습니다. ‘내 몸이 나를 잃어버렸구나! 지금 어딘가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겠구나.’ 우리는 잃어버린 걸 찾는 일보다 새것을 사는 일에 익숙합니다. 덩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을 견딜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거울을 보며 영혼이 잘 지내는지 묻지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봉인된 편지 봉투 속 사진을 꺼내 보고 싶어집니다. 그 사진 속 어린아이와 함께 나른한 햇살을 맞는 찰나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건네고 싶어집니다. 고마워. 나를 다시 찾아와줘서. (그림책, 일반)



홍지혜_그림책작가, 『L 부인과의 인터뷰』 저자





위의 글은 2018.12.01.에 <아침운동독서>라는 월간지를 위해 쓴 서평이다. 서평이라기 보다는 그냥 독후감정도의 글.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 내가 영혼에 대해 이렇게 적었구나하면서 웃었다. 흐흐흐

지금도 난 영혼이 뭔지 모르지만, 영혼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해하며 귀 기울인다. 


종종 내가 왜 이 지구별에 왔는지 영혼에게 묻는다. 영혼이 뭐라고 말해주는 지는 모르지만, 순간순간 지구에 오길 잘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때마다 그 이유들이 모두 내가 지구에 온 이유일거라고 믿는다. 


신은 위대하지만 사소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는 걸 잊지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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