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화인데 누군가 낙서하자 낙서화가가 지우라고 한 이유

그라피티 작가 존원 그림 훼손 사건 리뷰

by 관람객



오늘은 어떤 사건을 보며 의아했던 점을 적었다. 일이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를 주었던 이슈로써 다뤘다. 기사로 실려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낙서화에 일어난 낙서 소동


작년 3월 말,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한 전시회로 경찰이 출동했다. 미국인 그라피티 작가 존원(JonOne)이 출품한 작품 <무제Untitled>에 한국인 20대 커플이 물감으로 낙서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시 관계자는 존원 측에 작품 훼손 사건에 대한 소송이나 보험처리를 하지 않도록 제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존원은 "내 그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속상하다"라며 원상복구를 원했다. 1000만 원에 달하는 복원 비용 일부가 커플에게 청구됐다. 그들은 붓질 한 번으로 결국에 1000만 원을 냈을까?


결말은 NFT(대체불가토큰) 미술품 거래 업체 닉플레이스가 그림을 구매하면서 배상 책임을 묻지 않게 됐다. 커플이 그림에 붓질하는 CCTV 영상은 NFT로 제작해 판매하기로 했다. 존원의 그림이 5억 원대로 알려졌는데 이 영상은 10억 원에 책정돼 다시 한번 유명세를 치렀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에도 보도되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떠들썩했다. "주최 측이 중요한 작품 보호용 차단봉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관람객은 조심했을 것이다."라는 의견과 "관람객이 전시 에티켓이 없었다. 작품은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CCTV에 촬영된 모습, 전시기획사 제공
<Untitle>이 훼손된 부분, bbcnewskorea



커플은 작품 훼손 경위로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어 낙서해도 되는 참여형 작품인 줄 알았다"라고 주장했다. 전시 주최 측은 "전시장에 놓인 붓이 딱딱하게 말라서 굳어 있었는데도 관객 참여형 작품이라고 생각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양측은 난처해하며 참여예술을 언급했다. '참여예술'이 무엇인지 잠시 살펴볼까?



참여예술이 뭐지?

참여의 어원은 카톨릭 신도가 예배에서 갖춰야 할 덕목으로부터 출발한다. 더 자세한 의미로 '능동적 참여(participatio actuosa)'는 "창조하는 것(to build)"에 대한 "적극적인"인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신체적이고 외부적인 참여가 아니라 정신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¹

참여예술은 1960년대 과정과 장소 특수성을 중시하는 형태로 시민운동과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나왔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에서 비롯한 양상임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참여예술은 미적 대상을 통해 미술가와 관람자가 평등하고 비위계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을 강조한다. ² 참여예술은 이 정도로만 보고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오자.



그라피티는 또 뭐람?

기존 전시 포스터(왼)와 그림 훼손 사건 후 바뀐 전시 포스터(오), P/O/S/T



전시 제목은 《STREET NOISE 스트릿 노이즈》, 주제는 '그라피티'다.


'그라피티'는 원시인들이 벽을 긁어 그린 그라피토(Graffito)에서 출발했다고 추정된다. '긁다(Scartch)'라는 뜻인 이탈리아어 그라피에르(graff7iare)가 어원이다. 복수형인 그라피티(Graffiti)는 원시시대 벽화에서부터 정치적 · 성적 유머, 자신을 알리기 위해 벽을 긁고 그린 낙서까지 모든 것을 지칭한다. ³




1970년 여름 뉴욕 할렘가와 주민들, Jack Garofalo, flashback



현대 그라피티가 출현한 배경은 사회와 경제 변화에 따른 도시의 슬럼화와 관계가 있다.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는 아메리칸드림을 실현코자 다양한 유색인종이 모이기 시작한 곳이다. 1959년 미국 정부는 브롱스 중심을 지나는 철도를 짓기 위해 집 6만여 채를 헐었다. 브롱스 이주민의 주거 환경은 급속히 열악해졌다. 브롱스와 비슷한 도시 곳곳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된 이주민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인종, 마약, 폭력, 조직범죄를 비롯한 온갖 문제에 맞닥뜨렸다.



지역내 갱단 그라피티 위치를 표시한 지도, David Ley and Roman Cybriwsky ,Urban Graffiti as Territorial Markers, 498.



1960년대 필라델피아에서 그라피티는 갱단이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는 표식이었다. 이것이 1970년대 초반 뉴욕으로 퍼지면서 낙서 화가의 표시로 바뀐다. 낙서 화가는 맨해튼 할렘과 뉴욕 변두리 지역인 브루클린, 브롱스 출신이 많았다. 흑인이나 라틴 아메리카계 소수민족으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10대였다. 집단이 사용하던 표식이 빈민가 청년들 개인에게로 이어졌다. 소외계층이 백인 남성 중심주의 미국 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표현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존원의 그라피티 활동 역시 성장 배경과 관련 있다. 부모님은 도미니카공화국 이민자 출신이고, 그는 뉴욕 할렘가에서 자랐다. 17살에 지하철과 벽에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라피티 세계로 입문했다.



작품 가격도 올랐고 겨우 붓질 한두 번인데 왜 복원할까?


2016년 예술의 전당 전시 《위대한 그래피티》에서 JonOne과 라이브로 공개된 <Untitle>, David Maginot, BYNDER
JonOne, <Untitle>, 2016, 중앙선데이



여기에 존원이 작품을 복원해달라고 한 이유가 있다.

존원의 붓질과 커플의 붓질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차이는 붓질이 아니라 '입장'이다.

그라피티 작가에게 표식은 서명으로, 서명하는 행위는 도시화, 차별, 소외, 통제하려는 지배 권력에 저항한다는 표현이다. 2021년 한국에 살며 문화생활 정도는 즐기는 20대 청년이 1970년대 뉴욕 할렘가의 10대와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한 페인트칠 사이에 단순한 호기심으로 칠해 본 붓질이 불법을 저지르며 생존권을 외치는 행위인 붓질과 같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존원이 현재 뉴욕 할렘가의 10대 청년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전시에 해당 작품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그것이라는 소리다. 또한 존원이 그리는 모든 그림과 행위 자체가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다.



붓과 페인트 통은 왜 두었을까?


《STREET NOISE 스트릿 노이즈》 전시 전경, 청소년기자단
《STREET NOISE 스트릿 노이즈》 전시 입구 및 전시실 전경, 전자신문
<Untitle> 앞 붓과 페인트 통 설치 모습, 2021, 파이낸셜뉴스



해당 전시 공간은 그라피티 작가들이 활동하는 도시의 모습을 조성해 놓았고, 작품이 외벽에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상황도 잘 보여준다. 앞에 붓과 페인트 통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 벽에 존재했던 것을 캔버스로, 전시장으로 가져왔을 때 생기는 한계를 설치로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마치 현대 시민의 광장처럼 그라피티는 벽 자체가 발을 딛고 외칠 땅이다. 불법으로 벽을 점령해 그리다가 경찰이 나타나면 빠르게 도망쳐야 한다. 여의치 않을 때 무거운 재료는 그대로 버리게 된다. 바로 그 상황이지 않은가.


원래 자주 그려진 장소는 지하철 외벽이었다. 지하철을 선호한 이유는 이른바 치고 빠지기 '공격과 도망(Hit and Run)'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그라피티는 범죄가 불가피하다. 존원은 합법적 작품을 생산하는 유명 작가가 됐다. 하지만 그의 이전 활동도 그랬고 다른 그라피티 작가들은 주로 불법적 활동으로 작업을 개시한다. 그라피티의 전복적 의미와 힘은 불법에서 나왔고, 그들은 도시 한 장소를 차지하고 배척당하는 상황 속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따라서 소동이 일어난 원인이 차단봉 설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차원의 문제다. 화자의 입장과 그라피티라는 문화를 바탕으로 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표현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눈으로 구분하기도 힘든 고작 한두 번의 붓질을 복원하길 원했을 것이다. 호기심에 그은 어린이 재료 체험 수준의 참여는 그라피티 작가가 저항을 표현한 생존 방식에 함께함을 드러내지 못한다. (앞 문장을 오해하면 안 된다 단순한 방식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한 모든 참여예술 작품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 붓질은 참여라는 핑계의 가면을 쓴 손장난이다.


입장이 필요 없는 개입은 '분업'이다. 분업은 내용이나 특성이 복잡해져서 단지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담당하는 자리에 누가 있어도 된다. 참여는 다르다. 예술 과정에서 '참여'가 되기 위해서는 '입장'이 중요하다. 미적 대상을 통한 소통을 중요시한다는 민주적 공동체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 분업이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강조한다면, 참여는 누구라도 평등한 위치라는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예술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일을 마주할 때,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한 태도가 되면 좋겠다. 작품값이 얼마나 오르냐에만 관심이 그치지 않고 나아가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우리에게 왜 필요한 이야기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100층 갤러리 더 스카이(GALLERY THE SKY)에 전시 중인 복원된 <Untitle>, 연합뉴스



소동이 끝난 11월, 전시 출품 갤러리 측은 이벤트를 연다. 다른 관람객도 작품 위에 붓질과 스프레이를 뿌려보도록 보호용 플라스틱을 만들어 덮었다. 이 기획의 이름은 '공존'이다. "각자의 자유로운 예술 행위는 존원 작품의 가치와 함께 예술 본연의 가치를 200% 느끼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






1) 조주현, 「포스트-미디어시대 참여예술의 담론과 양상 연구」(박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6), 11.

2) 파블로 엘게라(Pablo Helguera)는 1960년대 사회운동이 예술분야에 보다 활발한 사회 참여를 불러왔고, 과정과 장소의 특수성을 중시하는 행위예술과 설치예술의 등장으로 미술에서 참여적 양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톰 핀켈펄(Tom Finkelpeal)도 이와 유사하게 1960년대 이후 시민운동과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참여적 양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이후 새로운 미술 양식으로 부각된 참여미술은 민주 사회의 가치를 미술 작품에 직접 반영했다. 즉 비위계적이고 평등한 사회상을 관람자와 미술 작품 사이에 적용하여 관람자의 능동적 참여를 기대했다. 또한 페미니즘, 정신분석학, 문학 등 실천적 학문과 사상에 입각하여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을 시도했다. 안세이, 「현대미술에 나타난 참여적 양상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8), 11, 34.

3) Ernest L. Abel, The Hand Writing on the Wall, Greenwood Press, Inc, Westport, Connecticut, 1977, 11.

4) 양재영, 『힙합커넥션: 비트, 라임 그리고 문화』, 한나래, 2001, 24-25. 1950년대 크로스-브롱크스 고속도로 (Cross-Bronx Express)의 건설은 가장 파괴적인 프로젝트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의 모든 건물들, 마을들이 없어졌다. 이뿐 아니라, 이후 130마일에 걸쳐있는 13개의 고속도로를 세우기 위해, 21개의 마을들이 없어지고 250,000명 이상의 사람들의 생활권이 파괴되었다. 박수현, 「고든 마티-클락의 작품에 나타난 도시 개입 방식:1960-70년대 뉴욕의 도시문제를 중심으로」(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2011), 36.

5) Ley, David and Cybriwsky, Roman. "Urban Graffiti as Territorial Markers", Annals of the Association of American Geographers, vol. 64, no. 4 (Dec. 1974), 494-495.

6) 최민정, 「1970-80년대 뉴욕 낙서화의 표현방식에 관한 연구」(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09), 31-32.

7) 장재욱,「대중문화로서 그래피티 작품의 실존적 가치 고찰」, 『일러스트레이션 포럼』vol. 42, 2015, 114.

8) Jack Stewart, "Subway Graffiti : an Aesthetic Study of Graffition the Subway System of New York City, 1970-1978", ph. D. Dissertation, NewYork : New York University, 1989, 21.

9) 애너 바츠와베크, 『그라피티와 거리미술』, 시공아트, 2015,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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