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pon 2010-2017

토끼는 식물과 고양이 사이

by 환희

내 유학생활 첫 해부터 함께한 회색 토끼 퐁퐁을 집 근처 호수가 있는 숲에 묻어 주고 오는 길이다. 혈기 왕성했을 때에는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며 전깃줄, 종이, 벽지, 심지어 아끼는 내 가죽자켓까지 물어뜯어 이빨 자국을 남겨 놓아서 전기절연테이프로 모든 전깃줄을 감아놔야 했었다. 여러 번의 이사를 다니며 언제부턴가 퐁퐁은 케이지 문을 열어놔도 나오질 않았다. 너도 나이가 들었나 보구나 했다. 이사 온 집이 추워 케이지 바닥이랑 주변에 찬기를 막는다고 박스 여러 겹을 깔아주고 그렇게 이번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퐁퐁은 사료를 먹질 않았다. 그래도 간식으로 가끔 주는 곡물들이 붙은 막대기를 넣어주니 하나를 밤새에 다 먹어치웠고 샐러드 잎도 받아먹길래 단순히 입맛이 바뀌었나 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다 고개를 옆으로 떨구는 모습을 보고 확실히 무슨 문제가 있다고, 거기다 어느새 못 보던 엄지손톱만한 혹도 턱에 둥그렇게 달려 있는 걸 발견하고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토요일, 집 근처 동물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전화를 해서 9시 15분 예약을 잡았다. 여수의사가 토끼는 원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대신 어디가 아프면 바로 곡기를 끊고 죽는 동물이랐다. 그 혹은 이빨이 평생 자라나는 토끼의 특성상 흔하게 볼 수 있는 농양일 거랐고 지금 고통스러워하니 일단 그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잘못 난 이빨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일단 농양 제거 후 경과를 보자고 했다. 같이 간 B가 나 대신 물어봤다. 퐁퐁이 너무 나이가 든 거고 그걸 제거한다고 해도 딱히 나아지지 않는 거면 안락사가 나은 건 아니냐고. 그 수의사는 성을 내며 당신들이 오전 들어 두번째로 안락사를 요구한 사람들이라며 건강한 동물이 아픈 걸로 그렇게 바로 안락사를 시키려 한다는 듯이 비난했다. 이에 B는 방금 다녀간 자기 개를 데려와서 어디가 아픈 거 같은데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한 사람과는 다르다고 항변했다. 그 수의사는 나를 가리키며 이 토끼의 주인이 이 여자분이고 당사자가 원하니 수술을 진행하는 게 맞다고 했다. 확률은 반반이랬다. 언제나 그렇듯이. 장담할 수도 없고. 그래도 이걸 제거하면 고통을 없애주는 거랬다. 그래서 난 50프로의 희망을 갖고 아니 혹 좋아지지 않는대도 이제껏 나와 7년을 함께 한 반려동물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과 의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동의를 한 거였다. 그렇게 12시에 다시 병원을 찾았고 퐁퐁은 마취에서 덜 깬 것 같이 가만히 있었다. 의외로 째보니 농양이 아니라 수포였다고 했다. 이것 또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퐁퐁이 수술을 진행할 1시간여 동안 집에서 열심히 토끼 농양에 대해 찾아봤는데 수술 후에도 언제든 재발될 수 있다고 하고 이빨을 뽑아야 되면 그 수술비 또한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기에 초조해하면서 갔는데 수포라기에 안심했다. 덜 심각한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집에서 해야 하는 조치들을 알려주고 먹는 걸 거부하니 주사기에 아기들 야채 이유식을 넣어서 먹이라고 했다. 월요일에는 알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정상이고 한 번 봐준다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렇게 109유로를 지불하고 집에 데려왔는데 저녁이 되도록 퐁퐁은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나는 초록잎이 달린 당근 한 단과 아기용 이유식을 사 왔다. 의사가 보여준 대로 수건으로 감싸 안고 연고를 바르고 주사기를 입에 넣기 쉽게 뒤집으니 아기처럼 안겨 가만히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게 안겨 있는 게. 데려온 첫날에도 퐁퐁은 쓰다듬는 것만 허용했지 자기를 들어서 안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었다. 눈을 반쯤 감고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걸 보며 나는 뭔가 안 좋은 걸 예감했었다.


새벽에 우리 집 고양이 이비자가 유난히 활발해 여러 번 깨웠고 4시에 또 잠에서 깼을 때 어둠 속에서 퐁퐁 케이지 앞에 갔는데 나무 카반 안에서 기척도 없고 한기를 느껴 침대에 돌아와서 B에게 퐁퐁이 죽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우린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자책했고 그 의사의 양심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7살 되던 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려 이사 온 아파트에서 아빠의 선물로 요크셔테리어를 받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2살 된 요크셔 뽀미가 점점 상태가 안 좋아져 곧 숨이 넘어가는걸 수건에 꽁꽁 싸매 데려갔었다. 우리 집을 거쳐간 모든 강아지를 십여 년간 꾸준히 데려갔던 그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피 안에 있는 뽀미의 혈청을 채취해서 약을 만들 수가 있다고 제안했고 우리 가족은 알았다고 했고 몇십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했고 뽀미는 그로부터 이틀 있다가 죽었다. 아빠는 분노했고 믿었던 그 놈이 정말 동물을 위했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주고자 안락사를 제안했어야 했는데 돈에 눈이 멀어 마치 기적의 약이라도 되는 듯이 그걸 팔고 일말의 양심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요크셔인 송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우린 그 병원을 계속해서 다녔고 11살의 다 죽어가는 송이를 안고 갔을 때도 그 수의사는 또 뭔가를 제안했다. 약조차 받아먹을 수 없는 채 1키로도 되지 않는 개를 앞에 두고 말이다. 나는 또 한 번 실망하며 발걸음을 돌렸고 송이는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서 죽었다.


퐁퐁을 담당한 저 의사는 퐁퐁의 상태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의사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의사는 살리고 고치려고 있는 거지 동물을 죽이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고 안락사는 정말 최후의 보루라는 것도. 그래서 보통은 제안하지 못하는 것도. 나는 토끼 나이 7살이 얼마나 나이가 든 건지, 저 혹을 열었을 때 수종이라는 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지 판단할 수 없는데 저 의사가 혹 그게 더 심각한 걸 의미하는 건데도 어쩔 수 없으니 수술도 잘됐고 월요일엔 혼자 힘으로 먹는 게 가능하다고까지 말한 거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퐁퐁의 존재는 우리 집 식물들과 고양이 사이쯤에 위치했던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식물을 잘 죽인다고, 식물 킬러라고 웃으면서 말하기까지 하는데 그건 가슴 뜨끔한 죄책감이 배제된 걸 거다. 토끼보다 훨씬 사람과 교감을 많이 하고 고통을 표현하는 개나 고양이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안락사를 요구하기보다는 끝까지 치료를 하는 쪽을 택한다. 나는 궁금했다. 저 혹으로 인해 퐁퐁이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 건지. 여의사는 그 고통에 대해 얘기했다. 지금 내 상황에 109유로는 정말 큰 돈이었다. 저금 통장에 비상금으로 딱 130유로가 있었고 나는 저 돈을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의사 말이 토끼는 12살까지 산다는데 그리고 병원이란 델 살면서 처음 데리고 온 퐁퐁인데 이 수술 한 번으로 훌훌 털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만약 내가 저 돈을 지불하는 대신 안락사를 시킨다면 내가 토끼를 식물에 더 가깝게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낄 양심의 가책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다.


퐁퐁은 눈도 감지 못하고 죽었다. 가장 좋은 사료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간식을 사서 먹였다고 하니 토끼는 건초를 먹고사는 동물이라고 의사가 말했고 건초는 언젠가부터 줘도 안 먹었다고 하니 사료와 간식에 입맛이 길들여져 그런 거랬다. 그렇게 파는 간식들, 정말 안 좋다고. 게다가 당근을 줄 게 아니라 야생에서 토끼는 당근 잎을 먹고 산다고 잎을 줘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4시간 정도는 꼭 케이지 밖을 돌아다녀야 한다고도. 딱딱하게 굳은 빵을 이빨 가는데 좋을 것 같아서 줬었는데 그것 또한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야채가 아니어서 소화기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는 토끼를 키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먹어졌다.


오전에 잠깐 내린 눈이 비로 바뀔 때 호숫가에 갔다. 우릴 빼곤 전부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린 조깅로를 벗어나 호수 가까이까지 내려가 토끼 똥이 종종 보이는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나이키 박스 안에 담아 온 퐁퐁을 묻었다. 집에 오자마자 케이지를 정리해서 분리수거해 버리고 아직 가득 남은 사료와 건초를 중고사이트에 올렸다. 10분 뒤에 그 사이트에서 메일이 왔다. 내 게시물이 적절하지 않다고. 동물이나 악세사리, 케이지는 거래가 가능해도 이미 개봉한 먹이는 거래가 가능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식물만큼이나 따로 신경 쓸 일 없이 물과 먹이만 채워주고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을 갈아주는 게 내가 7년 동안 했던 일이다. 퐁퐁이 내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언제나 우리 집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누군가에게 맡길 때마다 그 케이지와 날리는 털들 때문에 궁시렁댔다. 이비자를 입양한 후로 헨드폰에서 퐁퐁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기도 했다.

시간을 함께 한 동물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에 떠나보낸 두 마리의 강아지 사체와 퐁퐁까지, 가까이만 손을 갖다 대도 느껴지는 그 한기가 너무 생경해서 직접 만져볼 용기도 내지 못했지만 적절한 장소를 찾아 땅을 파고 뉘이고 그 딱딱해진 몸 위에 내 손으로 흙을 덮으면, 이 작은 죽음에 내가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그 행위를 통해 전달된다. 우리는 이제 네 식구에서 세 식구가 되었다. 이비자 캣타워 옆에 항상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던 케이지가 사라진 자리가 휑하다. 그 자리를 메우려 뭐라도 놓을 게 없나 집 안을 둘러봤는데 저 자리는 원래 퐁퐁 케이지를 위한 자리였어서 딱히 대신할 게 없다.


퐁퐁 주려고 샀던 당근 한 단으로 당근 케이크를 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