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성인이 되어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환희를 느끼게 된다.
처음 사랑이 결혼으로 골인하는 운 좋은(?) 경우라면 그 환희가 현실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점점 다소 무뎌진 환희의 사랑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남녀간의 사랑은 자극적이고 강렬하지만 때론 본능적이고 계산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가끔 맹목적일 때도 있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전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게 된다.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창조의 기쁨(?)과도 직결되어 있다. 마치 매일 반복해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자연스럽고 따뜻하며 조건 없이 주려 한다.
때로는 내가 해왔던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회상하기도 하고, 아이가 위기를 무사히 넘길 때에는 내 생명을 건진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민재가 세 살 때였나? 남산 1호 터널 화재현장에서 차를 버리고 민재를 안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뛰쳐나왔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하지만 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난 민재를 위해 내 몸을 내던질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가끔 이런 극단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아이가 배가 고파 당장 죽어간다고 하면 내 살을 떼어내 먹일 수 있을까?
물론 이성적으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거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내 건강한 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면 틀리겠지만 선택의 수단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난 과감히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나는 아이들로 인해 많은 재화나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아이들 때문에 손해 본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녀간의 사랑과 구분되는 이런 맹목적인 것이 용납되는 사랑.
'나의 품에 있을 때 지켜줄게.. 할 수 있는 내 모든 것을 다해서..'
아마도. 나의 유년기가 생계에 대한 많은 시련들로 얼룩져있지 않은 것은 부모님의 이런 희생들이 뒷받침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등을 옷을 벗겨보면 수많은 흉터와 화상과 상처들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감히 생각해본다.
그들도 처음 하는 사랑에 빠져. 그 모든 것들이 행복했으리라고..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