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탬프 투어

by Far away from

요즘 유명한 여행지를 가면 스탬프 투어를 하는 곳이 많다. 각 주요 지역에서 도장을 찍어 그곳에 다녀왔다는 기념을 하는 것이다.

가만히 내 삶을 돌아본다.

내 머릿속에 찍혀있는 수많은 스탬프들. 각 지역별 시기별 추억들이 가끔씩 툭툭 튀어나와 '아.. 이땐 이런 추억 도장을 찍었었지?'라는 회상에 잠기곤 한다.

나 자신의 개인적 추억도 있지만, 현재에 있어서 가장 강렬한 스탬프 투어는 역시 '육아'에 의한 스탬프 투어일 것이다. 하루하루 콩나물 같이 자라는 아이들. 매일 저녁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면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둘째 민서는 아직까지 기저귀를 차고 오리 같은 모습으로 뒤뚱뒤뚱 뛰어다닌다. 활동량이 많고 먹성도 좋아 다리통이 민재만큼 커서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마음속에 기저귀 스탬프를 찍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기저귀 찬 모습을 기억 속에서나 더듬을 수 있겠지.

이제 제법 커서 대소변을 가리려고 대변도 구석에서 앉아서 보고, 소변을 기저귀에다 보는 것도 찝찝해한다. 요즘 민서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다.

“민서야. 이거 쪼꼰줄 알았어?”

“응”

“이거 쪼꼬 아니야~”

“쪼꼬 아니야?”

이런 식으로 어눌하게 되묻는 말투가 너무 귀여워서 온 가족이 깔깔대며 웃곤 한다. 이 어눌한 말투도 스탬프를 찍어본다. 조금 지나면 능숙한 말투를 구사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큰 아이가 되어있겠지?

자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연신 입술에 뽀뽀를 한다. 잘 때 괴롭히는 것이 왜 그리 설레고 신나는지..

낯선 느낌에 꿈틀대며 손으로 입술을 비비고 가끔 일어날 때도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난 매일 뽀뽀 시도를 한다.

작고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 보송보송한 우유냄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스탬프를 찍는다.

첫째 민재. 민재는 살은 찌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다르게 길쭉한 모습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민재와의 매년 매달 나눴던 교감과 추억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큰일이 닥치기 전에 준비하는 자세로 '나중에 민재가 나를 서먹서먹해하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 모두들 겪는 시기이니까..'라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옆에서 자려하고. 옆에서 잠을 못 자게 허리를 연신 쑤시는 행위도.. 너무 괴롭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스탬프를 찍어본다.

민재가 얼마 전 장염을 앓고 연신 구토를 하는 도중에도 주변이 더러워질까, 혹시 이불에 묻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아파하던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프면서도 눈치를 보는.. 아마 이 아이도 자신보다는 남을 더 배려하고 의식하는 아이로 커 가는 것 같다.

유전자의 영향인지 후천적 교육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좀 더 뻔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내 삶이 너무 고단하고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쓸쓸하고 아픈 성장의 과정.

씁쓸하지만 어제 아프면서도 맘껏 아파하지 못했던 민재의 모습을 스탬프로 찍어본다.

‘하늘의 별을 볼 때의 감동이 아무리 크다 한들 초롱초롱한 자식들의 눈망울을 볼 때의 감동과 같을까?’

어디를 가도 묻지도 않고 따라가고.. 함께 하는 모든 것에 신나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내 말에 복종하는 것에 대한 행복이 아닌, 모든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충만감.

많이 힘들고 지치고 부딪히고 갈등도 생기곤 하지만 그 본연의 모습은 행복과 사랑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어느 여름날의 기분 좋은 선선함. 보슬비가 내리는 저녁 무렵의 선선한 이 느낌을 스탬프로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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