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15

노가다의 평가

by Far away from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당하게 된다. 선천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후천적인 어떤 사건에 의해서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누군가에게 평가를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하나의 인간을 다양한 제도들로 평가하고 그 평가로 인해 많은 우대와 학대가 행해진다는 것이 왠지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진다는 느낌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첫 직장의 진급시즌. 생애 첫 진급을 앞둔 나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그간 평가는 나쁘지 않았고, 선배들의 선례를 봤을 때 진급하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 걱정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헐레벌떡 한들선이 뛰어온다.


“별아 니 진급자 발표 봤나?”


선배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로 봐선 1%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 같다.


“근데… 갈매기는 진급했나 보드라.. 니 우짜노? 개안나?”


성격에 그늘이 없고 직진하는 성격의 한들선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함께 숙소생활을 했던 갈매기 사원은 함께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세상 깔깔대며 웃고 격 없이 지냈던 후배였기 때문에 진급을 못한 것에 대한 좌절보다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후배인데 그 아이는 대리, 나는 사원. 후배에게 대리님이라고 해야 하나? 그만두라고 하는 걸까? 등등 다양한 생각들이 들었다.


경력사원이라면 덜했을 텐데 엄연히 기수가 정해져 있는 신입사원들 사이에 진급 역전이 발생하게 되면 무척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평가로 인해 인간관계마저 꼬여버리는 상황. 하나의 제도가 사람 사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갈등을 야기하게 해도 된단 말인가?


한동안 난 갈매기를 약간 멀리 했다. 그리고 이직에 대한 욕구도 더 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팀장님이 부임해 왔다. 다양한 경력과 소장님을 만족시키는 처신으로 외부인사가 한 번에 팀장을 차지한 상황. 하지만 원래 있던 직원들에 대해 잘 파악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연말에 있는 고과 평가가 직원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새로 부임한 임쌍 팀장님은 직원들을 한 명씩 불러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이 불려 들어가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음. 권별책임. 내가 직원들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직원들에 대한 평가 좀 해줄 수 있나?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하는 거 말이야”


“네??”


당황한 나는 순간 눈이 동그래져서 할 말을 잊는다. 동료들을 까고 밟으란 이야기인가? 성격 파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물어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참고만 하려고 그래 참고만”


“아.. 전 공종도 다르고, 다른 직원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몰라서요.. 죄송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기가 어렵네요..”


“그래? 알겠어. 그럼 나가봐”


나오고 나서도 황당해서 머릿속이 멍해졌다. 다른 모든 직원들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는 건가? 그러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했을까? 그간 친했던 동료들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공종이 다르고 나이도 어린 나를 안 좋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에이 설마.. 오만가지 잡생각이 교차해서 그날은 잠이 오지도 않았다.


그 결과를 아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차 팀장 평가 고과가 오픈되었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받아보지 못했던 최악의 고과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처리나 처신에 있어서 누구에 뒤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높은 고과는 아니더라도 평고과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를 받아보고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서는 것 같았다. 특히 면담에서 질문하는 것만 봐서도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동료들에 대한 의심과 미움도 커졌다.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으면 팀장님이 이런 평가를 내린 거지?’


며칠 동안 원망과 분노가 가득 쌓여 도무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나와 제일 친했던 김거성 팀장님께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 그간 있었던 정황과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거성 팀장님은 많이 걱정하는 맘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날 저녁 도서관에 가서 인사팀에 보낼 장문의 내용을 글로 적었다. 글을 적는 것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아 부당함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분이 근거 없이 나를 평가한 것과 달리 나는 근거 있게 그분을 평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장문의 글을 인사팀에 보낼 일은 없어져 버렸다. 2차 고과평가자인 소장님이 1차 평가자의 평가를 뒤집어 내게 평고과를 내려줬기 때문이다. 고과에 대한 것은 일단락되었지만 임쌍 팀장님에 대한 불신은 쌓여서 도무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훗날 그 임쌍 팀장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고, 폭풍처럼 몰아쳤던 나의 직장생활에서의 위기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후로도 매년 2번씩 평가를 당한다. 아무리 싫어해도 그 평가의 결과는 하나의 등급으로 확정 지어지고, 그것에 따라 연봉과 내 기분이 좌지우지된다. 아무리 싫어해도 피할 수 없는 것. 즐기려 해도 즐길 수 없는 것. 나는 평가를 하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세상은 그런 나를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를 당하며 살아간다. 학생 때는 성적으로, 스포츠 선수들은 시즌 성적과 각종 지표들로 평가된다. 월급과 연봉에 의해 사회적 평가가 나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끊임없이 평가를 당하며 잘한다 못한다의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내가 좋은 것만을 하고 싶지만, 내가 좋은 것만을 하며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나의 마음과 감정도 근육과 같아서 다양한 감정들로 트레이닝해야 강해진다고 믿기로 했다. 꺼림칙하고 피하고 싶은 감정들도 계속 피할 수 없다면 때로는 부딪혀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기특하다가도, 서글프기도 하다. 노가다 건물의 스카이라인 사이로 노을이 진다. 오늘의 노을빛은 유독 붉고 예쁘다. 노을이 예쁘면 환경오염이 그만큼 심해지는 것이라던데.. 한가득 걱정을 하다가 또 그 걱정까지도 내려놓기로 했다. 수많은 가시적인 걱정들 사이에서 이런 막연한 걱정까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에서 자유로운 세상이라면 과연. 완벽히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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