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과의 기차여행
내게 기차는 남들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의 탈출, 자유, 일상에 벗어남 등의 의미. 그런 기차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아이들을 위한 숨통이길 바랐다. 민재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긴장감 가득한 아이를 그 긴장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어진 부산의 기차여행들도 시시때때로 오는 아이의 압박감과 힘든 마음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은 나름대로 다 특별하지만, 내게 있어 기차여행은 다른 여행과는 구분되는 간절함이 더 있는 셈이다.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매 상황마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방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기차에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일정의 둘째 날의 시작은 호텔의 조식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이 컨디션이 많이 좋진 않았기 때문에 조식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조식을 먹고 나서는 민서가 좋아할 만한 산리오 러버스클럽 해운대에 갔으나, 오픈 시간이 12시라서 근처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간다. 12시 반에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를 예약해 놓아서 바쁘게 움직였으나, 12시 30분이 넘어서 45분 기차를 탄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민서가 많이 신경 쓰였나 보다. 민서는 기차 부산여행이 처음이기도 했고, 아직 어리고.. 그동안의 내 미안한 마음들에 민서가 좋아할 만한 소품샵 쪽으로 더 눈길이나 신경이 간 것 같다. 소소한 즐거움을 좋아하는 민재로써는 이런 일정의 과정이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다.
여럿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매 순간 만족할 순 있을까? 난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좋아하는 것들이 겹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더욱 모든 것에 만족을 찾기란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은 힘든데, 자라나는 아이들이 함께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결론은, 욕먹어가며 민서는 산리오 샵에서 득템을 하고.. 우리는 블루라인파크 열차를 타러 간다. 미포역에서 송정역까지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가는 해변열차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서서 가니까 아이들 감흥도 떨어지고.. 하지만 함께 한다는데 의의를 두며 기차를 탔다.
바다에는 갈매기가 참 많았다. 새우깡을 주는 사람들 주변으로 몰려드는 갈매기. 부산의 여전한 것들 중 하나의 모습이긴 한데, 그 안의 갈매기의 세대교체는 많이 이루어졌겠지? 변함없는 것들이 실은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해운대 미포집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점심식사를 끝내고 해변가를 걷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그 풍경과 더불어 해변가에서는 불쇼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공연도 민재와 처음부터 봤던 공연과 짜임새가 비슷한데 사람은 매번 바뀐다. 이들도 집단이 있어서 조금 유명해지면 어디론가 떠나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보고 싶던 공연을 민서와 함께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민서도 너무 신기해하고.. 좋은 시간.
보고자 했던 광안리 드론쇼는 보지 못했다. 와이프의 컨디션 난조 등으로.. 그래서 저녁은 주변 오븐에서 공수한 구운 치킨과 컵라면, 과자와 어제 먹다 남은 이재모피자를 먹었는데, 점심식사보다 만족도가 높다. 12만 원 들여서 먹은 점심과 3만 원짜리 점심.. 내 입이 저렴한 것일까?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해운대에서 먹는 칭다오 맥주는 특별한다. 아이들 눈치를 보며 한 캔을 먹었는데,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만족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해운대 바다를 연신 쳐다본다. 아이들과 와이프는 침대에서 잠이 들고.. 이 마지막 밤이란 느낌은 어느 여행지에 가나 특별하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주는 감성은 나를 많이 움직이게 했던 감성. 민재가 '너와의 이때를 기억하고 싶어'를 보며 지금은 제법 그럴싸하게 나를 가스라이팅 하려는 것처럼. 날 움직이는 감성 코드가 있다. 마지막. 죽음. 사후세계... 인간의 창작성은 미지의 세계가 주는 두려움과 막연함으로 비롯된다고 믿는 나로서. 소중한 아이들이 내뱉는 그런 말들은 참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침대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뜨면 또 한참 큰 아이들이 침대 옆에 누워있을 것만 같아서 쉽사리 침대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인다. 해운대는 새벽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움직임.. 분주함.. 마치 미술작품 속 장면처럼 무심하게 쳐다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참 좋아한다. 감정소모를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즐거운 것 같기도 하다.
버티다 버티다 침대로 들어간다. 나의 고통을 아는지 민재가 몸부림치며 이불을 걷어찬다. 살아있는 존재는 모두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버텨야 한다. 고통과 위기는 예고하고 오지 않기 때문에,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중 많은 부분이 힘든 과정으로 채워진다. 나의 아들 딸이 그리고 와이프가 잠시나마 쉴 수 있기 바라는 마음. 그들의 고통을 많이 짐작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간절한 기도이다.
무심하게 밤은 지나가고,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해운대 바다. 그리고 토요코인 호텔. 분주하게 움직여 탑승한 기차에서의 마음은 후련하고 홀가분하다. 다음 여행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기차는 빠르게 주변 풍경들을 밀어내며 힘차게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