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기차는 달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이번 여행은 1박 2일이 꽉 찬 일정이라 저녁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것에 따른 이색적인 감정으로 인해서인지 옛 생각이 많이 난다.
예전의 나. 분명히 나였을 텐데. 오래전 기억이라 나인 것 같지 않은 타인을 마주하는 기분이 느껴지는 그런 기억들. 언제인지도 모를 그 밤에도 난 달리고 있었다.
훨씬 더 느린 속도의 기차를 훨씬 더 음질이 좋지 않은 CD플레이어나 MP3 플레이어를 유선이어폰을 끼고 들었을 나
지금은 훨씬 더 빠른 기차를 타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하여 음악을 듣고 있지만 결국 드는 생각은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내가 나이 들었고, 그때 젊었던 사람들도 지금 나이가 들었을 것이고..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가 많이 컸고..
많이 달라졌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내 기억을 아득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그런 풍경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올림픽 기간이라 방송에서 연신 떠들어대는 금메달 소식들.. 그때의 선수들은 지금 코치나 감독이 되어있는 것이 달라졌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 기분..
내 내면의 불안과 걱정 예민한 신체 증상들도 지금이 너무 힘들지만 과거에도 똑같이 있었던 것들이란 생각으로 과거의 나를 마주 본다.
과거의 나를 동경 어린 시선으로 봤던 것에서 더 나아가.. 그때도 똑같이 힘들었을 텐데..라는 측은함으로 과거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 옆의 잠든 아이를 본다.
민재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이다. 중학교 2학년의 여름방학. 그 변화무쌍하고 소중한 시간을 아빠와의 부산 여행을 하고 싶다 하던 아이.
8살.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 부산여행을 함께 하던 민재와.. 초록색 거북이 등껍질같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학교를 향하던 그때의 민재가..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으로 나에게 이야기하고.. 나를 마주 보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와 다름없이 한결같이 소중하고 예쁘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끔은 큰 아이로 치부하고 하나둘씩 놓아주려 하는 나의 마음을 이번여행에는 훌훌 날려버리고, 힘껏 끌어안는다. 맘껏 사랑하고 감정을 쏟아낸다.
첫날. 이제는 GTX가 개통하여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탄역으로 간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는 첫차를 탔다면 지금은 GTX를 타기 위해 6시 40분 기차를 예약했다. 부산에 도착하니 9시가 넘은 시간. 이 시간에 도착해 본 것은 처음이라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활기찬 부산역의 모습이 다소 낯설다.
본전돼지국밥은 역시 줄이 길어서 우리는 대건명가에서 돼지국밥을 먹는다. 냄새도 안 나고 너무 맛있다. 대건명가에서 밥을 먹고 나와 중앙역으로 가서 영화체험박물관을 간다. 가보지 않았기도 했고, 체험할 만한 것들이 많고 어른끼리 가도 재미있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크게 작용했다. 트릭아트도 함께 예약했는데 크게 임팩트는 없는 느낌이었다. 영화체험 박물관에서 민재와 깔깔 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룸스에이 부산점 방탈출 카페를 예약한 시간이 가까워진다. 우리는 걸어서 룸스에이 방탈출 카페 근처까지 가서 시간이 조금 남아서 고니스커피에서 망고스무디와 자몽에이드를 먹으며 시간을 좀 보낸다.
시간이 돼서 시작한 룸스에이의 낭랑카페 방탈출. 난이도 별 세 개짜리라 두 번째로 쉬운 테마였는데, 막상 해보니 해야 할 미션이 너무 많아서.. 결국 실패. 하지만 민재와 거의 다 해결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그곳에서 나와서 밥을 먹으러 간다. 밥은 근처 자갈치 시장의 진주식당. 최근의 평이 좋아서 갔는데 부산 아지매의 특유의 말투와 챙겨줌이 너무 인상 깊었다. 민재를 아들처럼 여기시며 땀에 옷이 젖은 민재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시던 아주머니. 생선구이 소자를 먹었는데 가격은 3만 원. 공깃밥은 별도였다. 볼락과 고등어 삼치 갈치 가자미 등의 생선이 너무 푸짐하게 나와서 배불리 먹었다. 반찬도 맛있었다.
밥을 먹고 이젠 토요코인 호텔로 향한다. 자갈치역에서 해운대 역으로 이동. 토요코인 해운대 2에 체크인 한 시간은 대략 4시. 체크인하고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니 삐약이 신유빈이 탁구 여자단식 준결승을 치른다. 우리는 올림픽을 보냐 해운대 바다를 가느냐의 선택지에서 해운대를 선택한다. 해운대 바다에 가서 흠뻑 젖으며 노는데 아직은 좀 바닷물이 차가운 느낌이 있다. 해운대 바다는 6시에 입수를 금지한다. 한 시간 동안 바싹 놀고 다시 호텔로 돌아간다. 호텔에서 씻고 7시쯤 되니 다시 배가 고프다. 우리의 단골 금수복국으로 가서 밀복과 복튀김 세트 6만 3천 원에 먹는다. 복튀김은 맛있게 먹었으나 양이 좀 많아서 호텔로 남겨왔는데 결국은 많이 버렸다..
오는 길에 새로 생긴 인형 뽑기 집에서 선풍기 하나 득템하고.. 민재 십원빵 먹고. 이마트 24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 같은 거를 사서 호텔에서 먹으며 배드민턴을 본다. 우리나라는 아쉽게 준결승과 3,4위전에서 모두 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말해주고 싶었다. 호텔에 들어오기 전에 호텔 앞 배팅센터에서 그물망 배팅을 했는데.. 아사리판이긴 한데 민재가 무척 좋아한다.
호텔을 오랜만에 오션뷰로 선택했더니 뷰가 너무 좋다. 밤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바다에서 많이 놀고 있었다. 민재도 신기한지 계속 쳐다보다가 잠이 든다. 잠이 들었다..
둘째 날! 호텔 조식을 먹으러 8시 반에 나갔는데 사람들 줄이 장난 아니다. 이제는 서양권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특히 이번 부산은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많은 느낌이었다. 어렵게 조식을 먹고 호텔에서 짐을 챙겨서 나온다. 나와서 민재가 배팅을 다시 해보자 해서 다시 한다. 배팅을 하고, 민재 핸드폰이 충전이 잘 안 되어 장산역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택시를 타고 간다. 사람들이 많아서 꽤 기다려서 서비스를 받고 나온다. 그 시간이 아까운지 민재가 계속 언제 되냐고 연신 독촉을 한다. 부산에서 뭐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거니 민재야?^^
나와서 택시를 타고 송정해수욕장을 간다. 송정해수욕장에서의 해수욕은 처음이었다. 파라솔을 8500원에 빌려서 파라솔 밑에 있다가 바다에 잠시 들어갔다. 메가커피에서 음료를 사 먹었는데 서울 경기권보다 용기가 반은 작은 것 같다, 이런 프랜차이즈에서도 지역별로 크기가 차이 난다는 것이 놀랍다. 2시에 해변열차를 예약해 놓아서 그 시간까지 해수욕을 하다가 해변열차를 탄다. 송정해수욕장에서 미포역까지 가는 편도 노선.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외국인들이 연신 카메라의 사진을 찍어댄다.
미포역에서 걸어서 소반에 밥을 먹으러 간다. 달맞이 고개의 초입에 있는 민재가 최애 하는 식당. 민재와 처음 부산여행을 할 때 가게 된 식당이 이렇게 오랫동안 가게 되는 집이 될 줄은 몰랐다. 그때의 주인이 지금의 주인과 같은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인과 안부인사 한마디 묻지 않는 사이이지만, 이렇게 내 마음속의 단골집이 있다는 것도 참 가슴 푸근한 일인 것 같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운영하는 것 같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 엄마 하면서 서빙을 하고 계산을 하고 하는 것이 기특해 보였다. 불고기전골을 먹었는데 밑반찬도 맛있었고, 이번엔 웬일인지 민재가 직접 재배한 것 같은 오이고추를 맛있다고 리필해 먹자고 해서 리필을 해 먹었다.
소반에서 나와서 우리는 중동역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2호선을 타고 센텀시티 역을 가서 센텀시티 스파랜드를 간다. 민재와 7년 전에 갔던 곳. 민재도 어렴풋이 기억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에서 계란과 식혜, 아이스크림 꼬북칩등을 사 먹고 휴식을 취한다. 우리의 마지막 일정.
이제 부산역으로 향한다. 부산역에서 부산샌드와 환공어묵 등을 사서 기차를 탄다.
어김없이 기차 안에서 하는 민재와의 편지 쓰기. 늦은 저녁이라 귀찮을 법도 한데, 편지지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이번엔 잘 챙겼네?”
얘기하는 민재.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서로의 현재 기분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쓰고자 했던 돌아오는 기차에서의 글쓰기. 그 취지에 맞게 민재가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기차는 빠르게 간다. 빠르게 가는 속도는 변하였지만, ‘간다’라는 본연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빠르고 발전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간다’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젊으나 늙으나 죽기 전까진 ‘살아간다’는 같은 방향성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삶을 사는 과정에서 형태와 모습과 속도가 변했다고 해도 난 이제부터 ‘변하지 않았다’라고 표현할 것이다.
민재가 빠르게 성장하고 매번 여행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그것을 난 변했다고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변한 것은 변했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일 뿐.. 결국 기차는 오늘도 똑같이 철길을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