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땅에 비가 내린다
건조한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비는 내리는데
비는 온데간데없다
예전엔 비가 보였는데
지금은 비가 보이지 않는다
비에 젖어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는 사람도
나처럼 이미 젖어 여유롭게 비를 몸으로 즐기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 중에
비를 포함한다면
무척 슬프다
나는 비를 좋아했다
비가 오는 날은 내 몸속 마음속 성문을 마음껏 개방하고
묵은 감정을 마구 배출하곤 했다
눈치 보지 않고 나 자신을 배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난 그 어떤 해소를 원했던 것일까?
정숙한 사람도 비에 젖을 수밖에 없고
고결한 사람도 불결하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정돈되지 않는 그 분위기가
난 좋았다보다
어차피 탄생과 소멸이 정돈될 수 없는 삶에서
과정이 정돈된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한들
불가피하게 피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 배설물들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아 아름다워라'
'모두 모든 순간 행복하세요'
그러면 좋겠지만..
비가 온다
비가 온다고 한다
다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비가 올 때 설레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차길 바란다
오래 묵은 것들을 배설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