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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슈퍼와 금촌슈퍼

반짝이는 내 오래전 기억

by Far away from

어렸을 때 심부름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주로 콩나물이나 두부 심부름을 많이 했었는데, 우리 동네엔 슈퍼가 무척 가까운 거리에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 슈퍼, 또 다른 하나는 금촌슈퍼


우리 슈퍼는 젊은 새댁 아줌마가 하는 곳이었고, 금촌슈퍼는 노인 부부가 하는 곳이었다. 우리 슈퍼의 아줌마는 무척 고상한 외모에 차분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었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아줌마를 대면하는 것이 왜 부끄러웠는지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잘 모르겠지만 난 우리 슈퍼를 가는 것이 좋았지만 부끄러움에 가기를 꺼려했던 것 같다.


집 밖을 나와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슈퍼를 향해 걸어가면서 난 항상 고민을 했다.


'오늘은 우리 슈퍼를 갈까? 금촌슈퍼를 갈까?'


우리 슈퍼 아줌마가 좋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보태주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앞서 우리 슈퍼를 갈 때도 있었고, 때론 편하게 말을 걸고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금촌슈퍼를 선택할 때도 있었다.


우리 슈퍼를 갈 때 짜릿한 것은 물건을 다 사고 나갈 때였다.

낡은 미닫이 문을 열며 인사를 할 때 아줌마는 웃으며 "잘 가"라고 말해주는데 그 차분한 목소리와 어조가 마치 고난에 지친 내 삶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우리 슈퍼는 사라졌고, 금촌슈퍼는 이전하여 운영하다가 얼마 전에 사라졌다.


내 기억에 또렷이 살아있는 우리 슈퍼와 금촌슈퍼. 그곳의 주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던 꼬맹이었던 나를 기억하기는 할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두 곳을 번갈아가며 드나들었는지.. 알기는 할까?


가끔 우리 슈퍼를 지나쳐 금촌슈퍼를 들어갈 때 우리 슈퍼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죄책감에 시선을 피하곤 했었는데.. 다른 슈퍼를 들어가는 나를 본 아줌마는 서운함을 느끼셨을까?


어쩌면 의식하지도 않았을 그 묘한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기억을 쓸데없는 기억이라는 폴더에 넣어놔야 하는 것일까?


내게 풋풋하고 포근하고 별처럼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제는 지나가버린 오랜 과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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