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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분신

기차여행 10

민서는 일본 민재는 부산

by Far away from

와이프와 민서가 처형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간 주말이다. 나는 민재와 부산여행을 계획했고, 토요일 아침 일찍 부산행 기차를 탔다. 지난번 여행에 완연한 사춘기 아들과의 부산여행에 다소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좀 더 큰 마음을 먹고, 또 많이 수용하리라 다짐을 하고 갔다. 사실 와이프가 얼마 전에 보내준 동영상과 글에서 내가 깨닫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마음에 거슬리는 부분을 내가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에 참고 참다가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와이프는 항상 내가 어느 쪽에 치우쳐져 있을 때 항상 중심을 바로잡게 도와주고 옆에서 나에게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좋은 여자이다.


부산역에 도착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본전돼지국밥을 지나치며 봤는데 역시 줄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우리는 살짝 지나쳐 항상 가던 대건명가에서 돼지국밥을 먹는다. 돼지국밥은 언제 먹어도 참 맛있는 것 같다.


돼지국밥을 먹고 이번엔 감천문화마을을 찾아보기로 한다. 2-2번 버스를 타고 부산역에서 출발해서 감천문화공원으로 가는 마을버스 안엔 우리 빼고 전부 외국인이다. 민재와 나는 일본에 있는 민서랑 와이프보다 더 외국인이 많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농담 삼아했다. 마침 감천문화마을에서는 축제를 하는 중이었다. 감천문화마을을 걷고 스탬프를 4개 찍으면 경품추첨 기회를 주는 축제였는데 그 스탬프를 찍기 위해서라도 더 감천문화마을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민재와 함께 걷는 길이 좋았고, 날씨도 좋았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곳에는 어린 왕자 동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뜨려있었다. 우리는 그 옆에 어린 왕자빵을 사 먹는다. 델리만쥬 같은 맛인데 비주얼만 다르다. 그래도 맛있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샛길로 내려가는 길에는 무척 야위고 아파 보이는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냥 보이는 게 아파 보일 뿐이지 실은 무척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민재가 했다. 민재는 보이는 것 이면의 다른 모습까지 볼 줄 아는 훌륭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잘 크고 있구나 우리 민재‘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경품추첨하러 갔는데 이젤 목소리와 똑같은 여자 직원이 있었다. 무척 어린 여자직원이었는데 설문조사를 구걸하며 해달라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설문조사 항목은 솔직히 너무 많아서 힘들긴 했다. 경품 추첨을 했는데 우린 둘 다 5등이 나와서 호박엿과 작은 약과를 선물로 받는다. 문화마을을 내려와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해운대 쪽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역시 외국인이 참 많았다. 부산이 관광도시이긴 하지만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외국인이 많았다. 아시아권 북유럽권 미국권 가리지 않고 세계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참 많았다.


우리는 해운대역 다음 역인 해운대온천역에 내려서 출출해진 허기를 평양냉면으로 달래기로 했다. 부산밀면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곳인데 부다면옥이라는 미쉘린 맛집에 선정된 곳이다. 다행히 우리가 마지막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양냉면 두 개와 맛보기 수육 하나를 시킨다. 그곳에도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평양냉면이 나왔는데 무척 맛이 있었다. 평양냉면이 깊은 맛이 있었고, 수육도 참 맛있었다. 외국인들은 냉면도 맥주와 함께 먹는 모습을 보며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평양냉면을 먹고 호텔로 향하는 길에 해운대배팅장에서 민재는 야구를 좀 한다. 그리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려 하는데 아직 3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입실을 시키지 않는다. 한참 기다렸다가 입실. 이번엔 토요코인 사이트에서 예약하지 않고 트리플이라는 어플을 통해 예약했는데 안내 직원이 토요코인 회원가입을 하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신입인듯한 직원은 내가 회원권이 있다니까 중학생인 민재에게 호객을 한다. 좀 너무하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호텔로 입실을 한다. 이번엔 오션프런트뷰 트윈배드를 선택해서 좀 쾌적한 방이다. 물론 가격도 좀 비쌌다. 하지만 항상 옆의 호텔만 보이던 뷰였던지라 민재에게 좀 미안해서 이번엔 돈 좀 쓰기로 한다.


호텔에서 좀 휴식을 취한 우리는 민재가 전날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 바람에 근육이 많이 뭉쳐있다는 얘기를 듣고 힐스파에 오늘 가기로 합의한다. 그래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힐스파로 향한다. 힐스파에 도착했는데 전보다 가격과 옵션이 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에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사우나만 9천 원 주고 하기로 하고 끊고 가려는데 민재가 찜질방을 이용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서 다시 옵션을 바꾼다. 사우나 10시간 기준 1인은 21000원이었는데 전에는 좀 더 싼 짧은 시간 옵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저것밖에 없다고 해서 그 가격을 주고 2인 계산을 한다. 샤워를 하고 잠시 사우나를 즐긴 다음에 찜질방이 있는 3층으로 향한다. 라면과 식혜 계란과 칙촉등을 사서 야외 테이블로 나갔는데 해가지는 시간이라서 뷰가 장난 아니다. 그 가격을 주고 들어온 게 하나도 아깝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배불리 먹고 났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배가 자꾸 아파서 좀 고생을 한다. 사우나에서 나가서 민재가 티셔츠 하나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세이브존 해운대점을 향한다.


그곳에서 아디다스 매장에 들어갔는데 기능성티를 39000원 행사하길래 하나 사고 해운대 바다를 한 바퀴 둘러본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저녁으로 먹던 금수복국은 이번에는 좀배가 불러 힘들 것 같아서 해운대 시장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먹기로 한다. 우선 민재가 좋아하는 반건조오징어구이를 산다. 그리고 줄이 엄청 길었던 봉자네실비집이라는 파전을 파는 상점에서 민재가 줄을 서서 먹어보자고 해서 줄을 선다. 항상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며 효율을 강조하는 민재가 이런 것도 인내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았다 몇 번 얘기하다 보니 이런 거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상황이 그래서 그렇지 이런 긴 인내에 이은 작은 결과도 좋아하는 민재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두 개를 사서 돌아가려는데 민재가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맘스터치에서 치킨 반마리를 튀겨간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음료 및 기타 먹거리를 사서 숙소로 들어간다. 숙소에서 사 온 것들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맥주보다는 소주를 한잔 한다. 민재와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고, 고추잠자리와 뷰티플너드를 처음 좋아하게 된 이유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해 민재가 이야기해 주어서 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피곤해서 바로 자고 싶었지만 민재는 배불러서 못 자겠다고 해운대 한 바퀴 돌자고 한다. 못 이긴 척 따라 나갔는데 밤에 도는 해운대 바다도 참 분위기가 좋았다. 민재는 다트 풍선 터뜨리기를 해서 8개 중 3개의 풍선을 터뜨려서 돌고래 인형을 선물로 받았는데 무척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바다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인어공주 모래조각상이 있었는데 이런 작품도 참 가치 있어 보였다. 그런 곳에 그런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시도가 멋있고 값져 보였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이제 잠을 청한다. 잠자리에서 민재는 오늘 하루가 정말 길어서 아침에 있던 일이 마치 며칠 전의 일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정신없이 살고 있고, 또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생각할 것도 많고, 또 잊어야 하는 번뇌들도 많은 시기인데 아들의 이런 한마디가 나를 참 살아있게 한다는 기분이 든다. 가족이란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와이프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에너지를 너무 받고 있는 나로서는 혼자 외롭게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이 더 강해지는 시기인 것 같다.


민재가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에게 들어보라고 들려준 royal44라는 그룹의 노래 가사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한눈팔지 말 것,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꼭 기억할 것.

더 힘을 가질 것

더 많은 돈을 가질 것

어깨가 무거워도 절대 무너지지 말 것


아침이 되어 토요코인 조식을 먹는다. 민재는 배가 고팠는지 고봉밥을 먹고 빵도 하나씩 먹는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나간다. 오늘은 좀 일찍 짐 정리를 마쳐서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체크아웃을 한다. 우리는 해운대 바다에 갔다가 동백섬을 한 바퀴 둘러본다. 예전에 민재와 함께 왔던 곳인데 민재는 잘 기억을 하지 못하는 눈치다.

APEC국제회의장도 구경하고 흐린 날씨에 바닷가 길에 함께 걸으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는 게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해운대 쪽으로 와서 해운대 역 쪽으로 가는 길에 인형 뽑기를 좀 하다가 해리단길을 간다. 해리단길에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민재가 말해준 우리 가족이 전부 갔던 카페를 갔다. 로우 앤 스위트이란 카페인데 민재가 말해서 기억이 났고 갔더니 역시 좋았다. 그곳에서 오늘 12시에 발매된다는 고추잠자리의 앨범과 저지를 어렵사리 주문하고 밥을 먹으러 소반으로 향한다.


소반에 자전거를 타고 도착하니 사람이 무척 많았다. 기차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는 것이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우리가 주문한 걸 까먹었다고 해서 민재와 나는 동시에 멘붕. 하지만 늦지 않게 밥이 나왔고 기차에도 무사히 승차할 수 있었다, 소반이 다음 달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슬픈 소식을 들어서 좀 우울했다.(주문을 놓쳤을 땐 솔직히 다음엔 다시 안 와! 생각하긴 했지만..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이렇게 마치는 민재와의 10번째 기차여행.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간다. 와이프와 민서를 데리러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좀 이른 시간에 돌아가는 것으로 예약하였다. 너무 지치는 일정보다 이렇게 짧게 짧게 하는 여행이 더 편리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젠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함께 오랫동안 교감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아 지겠지.


와이프가 물었다.


“이번여행은 어때?”


난 진심으로 대답했다

너무 좋고 너무 감사한 여행이라고

결국 좋고 나쁨은 내 마음 안에 있고, 민재는 똑같은 모습을 보여줬고, 악의 없는 그 시기에 최선을 다하는 순수한 모습이었지만.

내 안의 남은 수많은 찌꺼기들이 그 모습을 왜곡하고, 과거와 비교하고.. 마치 굴절된 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그랬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는 것..

중3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민재는 그 어느 때의 모습보다 더 절실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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