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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분신

소꺼비

by Far away from

처음 널 만날 때의 설렘이 생각난다

말하지 못하지만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사람이 아니지만 친구 같은 느낌

내 몸을 맘껏 의지하고 내 가족을 지켜줄 것 같은 든든한 느낌

송홧가루가 쌓여갈 수밖에 없는 지하주차장 없는 아파트에 사는 못난 주인 만나 눈 오면 눈 맞고, 비 오면 비 맞으며 그 자리에서 단단히 주인만을 기다렸던 너

너와 만난 그 5월을 난 기억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이젠 사춘기를 넘어 고등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시기에 널 보내려 한다

모진 오프로드의 전국 캠핑장을 누비며 단 한 번의 고장으로 불만을 토로한 적도 없는 너


자전거 싣고 몸에 갖은 상처 다 입으며 이고 지고 또 우리를 태우고.. 너는 상처 입고 다치는 중에도 우리를 안전하고 안락하게 태움에 모자람이 없었다

취미 많은 주인을 만나 온갖 것들 다 싣고 전국을 누비며 네가 느꼈을 기분은 설렘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너와 나눈 시간들이 너무 벅찬 느낌으로 다가와 쉽게 너를 바라보지 못하겠다. 매만지지도 못하겠다. 네 얼굴에 새겨진 우리 네 가족의 얼굴과 성장과정이 아직도 깊고 투명한 너의 얼굴에 맑게 비쳐.. 나의 눈물이 비칠까 두려워 네 앞에서 울지도 못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일까 고마움일까?


소꺼비. 나의 살과 심장 같았던 너. 너의 거칠어진 엔진소리도.. 삐그덕 대는 서스펜션도.. 갈아야 할 부품이 많아진 너의 몸도.. 오래된 친구의 모습 같아 좋았다.


도저히 보낼 수 없는 너를 보내려 하는 지금. 아낌없이 고맙다. 아낌없이 미안하고 사랑한다. 생명이 없는 너일지라도..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 첫사랑에게 눈으로 이별을 고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으로 영원함을 기약한다.


사랑해. 소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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