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아이(intro)
'나는 침을 뱉을때 나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질 그 아이가 걱정이 되서 마음이 쓰여.'
"어린왕자에 나오는 '관계에 대한 책임'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거니?"
분명히 난 침을 뱉으며 혼잣말을 한 것인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뿌연 안개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헛것이 들리는 것일까? 하긴. 요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해 헛것이 들리는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메타세콰이어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숲길. 왜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길을 걷고있고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랫쪽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다.
느린 걸음은 생각을 차분하게 한다. 차분한 생각은 머릿속에 연결된 실전화기를 통해 나즈막히 속삭여 과거의 기억를 불러온다.
과거..현실.. 미래..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곳에서 현실을 과거로 밀어 던지는 것인지, 미래를 힘껏 끌어당기는 것인지 모르는 힘의 법칙에 관해 빠져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한다.
"이크.."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아준다.
"괜찮니?"
아까의 그 목소리..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눈을 가진 그 아이를 멀뚱멀뚱 쳐다보다 말을 건낸다.
"넌 누구니??"
내가 묻고도 너무 뻔한 질문. 하지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때 당연히 해야 할 질문.
"훗.."
무표정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 마치 두꺼운 아스팔트 바닥 속에서 스위스 알프스의 그림같은 풍경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신묘하다.
눈이 큰 아이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채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대답을 듣기를 포기하고 나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휙 돌아보는 그 아이.
그 시선에 전기라도 감전되듯 내 온몸이 전율한다.
다시 걷기 시작한 그 아이를 따라 걷는데 보폭이 전과 같지 않다.
가만히 손을 내려다 본다. 작아진 손과 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는 나..
'이.. 이건!'
"훗.. 너와 나의 과거 속으로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메타세콰이어가 날 덥친다. 하늘의 작은 별들이 별똥별이 된듯 커다란 항성 그 모습 그대로 떨어져 날 짓누르자 식은땀이 흐르며 잠에서 깨어난다.
'휴.. 꿈이었구나..'
마치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 같던 몽환적인 풍경. 어린 나. 낯선 아이. 꿈이지만 꿈이 아닌듯 생생한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새벽 2시. 창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본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시리우스 별.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누군가가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