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루프와 루프박스

쓸 수 있지만 쓰지 못하는 것들

by Far away from

'설치 하시더라도 선루프를 열고 닫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루프박스를 설치할때 설치 기사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


한때 나의 호연지기를 드높여 주었던 선루프란 녀석이 무용지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그것을 설치할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지만 며칠전.

벚꽃이 흐드러치게 핀 도로를 달리던 어느저녁.

옛 감정을 느껴보고자 열었던 선루프는 예전 그녀석이 아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활짝 가슴을 열어 내게 하늘을 보여 주었지만, 하늘은 가려져 있었고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예전 살랑바람이 아닌 거친 억새바람이었다.


변해가는 것들.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기능성보다는 느낌에 따라 현상을 다르게 받아 들인다.


연애하던 때의 아내 결혼후의 아내.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 유치원 다니는 아들.

누워있는 아기. 기어다니는 아기.

더 나아가 매일,매달,매년 달라지는 나 자신의 느낌도 다르다.


때로는 달라진 느낌이 선루프와 루프박스처럼 큰 상실감을 줄수도 있지만,

어쩌면 훗날 내 몸의 기능이 저처럼 예전같지 않게 될수도 있겠지만,


변화도, 상실감도, 사라지는 것들조차도.

벚꽃이 지고 또 내년 벚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듯이

또 다른 설레임으로 받아들여야 할 우리의 몫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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