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하지만 별거인 오늘
오랜만에 홍대로 나들이를 갔다.
우리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단골이 되어버린 닭곰탕 집을 찾았다.
자리를 잡고 닭곰탕 특과 보통, 닭칼국수를 시켜서 먹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민서와 민재는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많이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거세게 서로 양보 없이 부딪히기를 반복했었는데, 요즘엔 민재가 힘으로, 혹은 센 말투로 민서를 제압하기 때문에 민서의 '미안해'라는 말로 상황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민서는 장난을 치거나, 나쁜 의도가 아닌 본인의 감정표현을 솔직히 하는 상황이 많은데, 민재의 비유에 거슬리는 상황이면 전후 사정 볼 것 없이 화를 내기 일쑤이다.
'난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배운 거니?'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내적 갈등이 고조된다.
'어디서. 배운 걸까?'
닭곰탕을 먹으며 민서와 푸닥거리를 한 민재는 옆사람이 먹기 불편하니 팔을 좀 접고 먹으라는 내 말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좀~'
전후 사정은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얼음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민재에겐 훈육을 하려는 준비를 하며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친구처럼 지내며 마음을 활짝 열며 대했던 민재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나에게 짜증을 내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한 '상황'으로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되지 않곤 한다.
'민재야. 아빠한테 한 말이니 지금?'
확인을 했는데 자기도 당황했는지 별다른 대꾸가 없다. 지금 나가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먹던 밥은 먹고 이야기를 하리라 마음먹고 일단 밥을 먹으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나 민재나 밥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다. 길고 긴 식사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치 면역력이 없는 신체에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처럼 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와이프와 민서는 저만치 앞서 가고 민재와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처럼 효과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이야기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많이 물으며 이야기를 하게끔 유도했던 그동안의 대화방식과는 다르게 내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였다. 내 마음은 이랬고. 사람은 해야 될 말이 있고 그렇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민서와의 푸닥거리에서 이어진 만큼 앞으로는 민서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족족 개입하겠다는 말 등등.. 민재는 상황을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에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했지만 그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진 않았다.
나의 마음은 무엇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길고 길었던 홍대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고, 난 New Trolls라는 그룹의 아다지오라는 노래를 연신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배신감이었을까? 밀접하게 감정선을 교류하고 있었다는 내 자만심이 깨어졌기 때문일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감정선이 민재에게 너무 큰 기대나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일까? 오만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화산처럼 솟아나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마 그간 익숙해지고 편하게 지냈던 우리 사이에 일침을 가한 게 아닐까?
항상 익숙해지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시그널을 보내곤 했다.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면 놓치지 않으리라.. 전에 몸이 아프거나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했던 상황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난 항상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도리를 하면 된다. 과연 이 상황이 내가 복잡하고 깊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인지 단순하게 넘어가야 하는 상황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전자인데 단순하게 넘어가면 아이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결과가 될 것이고 후자인데 복잡하게 넘어가면 마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꼰대처럼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가 될지도 모른다.
'어렵다!!!'
집에 돌아와서 할 것들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들리 없다.
아이는 어느 때처럼 나에게 같이 자자고 애정을 갈구한다. 예전의 민재와 다름이 없다. 그런 행동들을 보니 오랜 시간 깊이 있게 나눴던 정서적 교감들이 떠오른다.
'그래.. 별것 아닌 상황을 가지고 아이에게 너무 오랫동안 훈육을 하는 것도 뒤끝 있는 행동이겠지..'
오랫동안 밤잠을 설치며 생각하다 보니 오늘 민재에게 너무 모질게 행동하게 말한 게 아닌가 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한편으로 크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지 않은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화났다가 자책했다가 위로했다가 후회했다가를 반복한다.
'아아악!!!'
해결이 되지 않거나 당장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일을 가끔은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그래. 시간에게 맡겨보자.'
하지만 주말에 예약해 놓은 휴양림 펜션은 취소한다. 민재와 단둘이 부산여행을 가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와이프도 동의해준다. 평탄하게 지냈던 육아에 일침을 먹은 후 부산여행의 원동력을 얻는다. 육아에 있어서의 또 다른 전기인가? 아이와 많은 것을 이야기하며, 내가 보지 못하는..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