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루마블

by Far away from

부루마블.

부루마블인지 부르마블인지 이야기할 때마다 헷갈리곤 하는 그 이름.

원래의 뜻을 찾아보니 원래 이름은 '블루마블'

푸른 구슬을 뜻하는 말로 지구를 지칭하는 거라고 한다. 전 세계 주요 수도와 지역을 구매하고 건물을 지어 파산하지 않고 버티면 이기는 부동산 게임. 부동산 게임이라고 하면 왠지 성인게임 느낌이 난다. '땅따먹기 게임'이라고 명명해야 좀 더 아이 느낌이 날까?


민재는 부루마블에 흠뻑 빠져있다.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머지(?)가 선물로 주신 이후로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나와 하면서 규칙을 배우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몸동작이나 에피소드 등으로 웃고 떠들고 즐기고.. 나도 무척이나 즐겁지만 단순 노동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연달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민재가 무언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민재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 비 협조적으로 나갈 때 민재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물론 그만하자고 할 때 떼를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민서가 방해를 부릴 때 민서에게 집중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게임을 하던 도중 쉰다고 거실이나 방에 누웠을 때의 민재의 반응이다.


첫 번째로 민서에게 집중할 때 민재는 나를 도와주려 안간힘을 쓴다. 평소 같으면 집중하지 않는 나를 탓하고 떼를 쓸 텐데, 게임을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민서에게 디보를 틀어주거나 다른 먹거리 등으로 흥미를 유도하게 아낌없이 도와준다.


두 번째로 쉰다고 침대나 거실에 누웠을 때 민재. 엄마랑 셋이 하던 중에 엄마와 내가 둘 다 빠져서 결국하려면 혼자 해야 할 텐데.. 혼자 한다. 혼자 세명의 주사위를 던지며 엄마의 질문에 대답한다.


엄마: 민재야. 혼자 하는 게 재미있어?


민재: 응. 아빠 언젠간 돌아올 거 아니야.


그 말을 누워서 듣고 나서 나는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나서 다시 게임에 합류한다. 그 정도의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는 민재에게 내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함께 해주는 것.


'함께 해주는 것'이란 말의 희로애락에 대해 항상 고찰하고 반성하고 나 자신을 다잡곤 하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은 그 말. 민재와의 시간이 너무너무 즐겁지만,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나에게도 쉼이 있고자 하는 생각에 망각 아닌 망각을 하고 만다.


그렇게 흠뻑 부루마블을 같이 하고 나서 자기 전에 민재가 항상 하는 말.


'아빠, 내일은 언제 와? 내일 빨리 와라 제발.. 같이 부루마블 하자.'


보통 3월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관념상. 아직 민재의 7세는 끝나지 않은 기분이다. 7세라는 나이가 내게 주었던 간절함. 그 끝자락에서 민재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갈구하고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 만족이란 단어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민재의 7세.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놀아주는 것' 이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인데.. 내가 게을러져서는 안 되는 유일한 것.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산타할아버지는 내게 선물을 주신 듯하다.


부루마블을 통해 함께 하는 시간.

어제는 부루마블을 하다 말고 민서를 재우기 위해 함께 자는 척을 하다 그만 둘 다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12시가 넘은 시간. 민재가 벌떡 일어나서 부루마블을 다시 하자고 하는데.. 지금 다시 해서는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재웠다.


밤에 잠을 깊이 못 자는 아이..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자다가도 일어나서 못다 한 부루마블을 하자고 이야기하는 아이. 아침 6시.. 이른 출근시간이지만 항상 일어나서 나의 귀가시간을 묻고 갈구하는 아이. 방학이라 더 자고 싶을 텐데.. 쉬고 싶고 편하고 싶고.. 혼자 할 수 있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는 세상인데.. 갈구하고 또 갈구하는 아이.


산타 할아버지는 2016년의 끝자락과 2017년의 처음.. 내게 일상이란 이름의 값지고 귀중한 이 시간을 선물로 주시듯 하다.


아낌없이 매만지고 껴안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민재야. 아빠는 민재를 너무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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