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처음으로 떠난 기차여행-4

친구가 되다

by Far away from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피자"


습관적으로 피자를 말하는 민재에게 되묻는다.


"민재 점심에도 스테이크 같은 거 먹었는데 저녁도 인스턴트 먹으려고? 저녁엔 밥을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아 그렇지."


만담 하듯 대화하고 해운대 시장을 걷는다.

곰장어. 돼지국밥. 각종 횟집들..


민재와 저녁 먹기는 적당한 곳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돌아서려 할 때 민재가 허름한 식당을 가리킨다.


"아빠. 나 여기서 비빔밥 먹을래"


테이블이 두서너 개 있는 시골 장속 식당.


"어? 민재야 여긴 좀.."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민재는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다.


'누굴 닮아 이리 터프하지?'


가자마자 네댓 명의 아주머니들은 마치 흑인가에 들어온 동양인을 보듯 신기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와 아들 둘이 다니는 모습도 신기했을 것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식당을 들어오는 모습 또한 흔한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하이고 이쁘게도 생겼네. 몇 살이고?"

"여덟 살이요~"

민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곧잘 한다.


"어디 보자.. 아빠는 안 닮았네~"

"네. 엄마 닮았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들은 박장대소가 터진다. 그리고 나와 아들을 다 같이 둘러싸서 번갈아 가며 본다.


뭐지.. 이 분위기는..

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만 들이켠다.

하지만 그 상황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


문득 예전 살던 곳의 시장 한가운데 있던 순댓국집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순댓국을 전문으로 팔던 집이라 거칠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항상 가게 안에 가득했던..

난 그곳에서 순대를 많이 사 먹었다.

거친 아저씨들을 상대하면서도 도도하고 유독 웃음이 많이 없었던 그 아주머니에게 내가 애가 아니라면 무슨 생각을 살며 사시는지 말을 건네 보고 싶었던 기억. 만약에 그런 말을 실제로 건네었다면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을 건네었다면 어떤 대답을 하셨을지 궁금하기도 한 그런 기억.


비빔밥과 된장찌개를 다 먹고 민재가 계산한다며 씩씩하게 내게 돈을 받아서 간다. 그런 분위기가 나름대로 좋은 것 같아 보이는 민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나 혼자라면. 혹은 내가 주도해서 갔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그 집이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식당의 벽엔 싸구려 다이어리를 한 장 찢어 작성한 편지 한 통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병든 노인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다시금 건강을 찾게 해 준 식당에 감사한다. 이곳의 추어탕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것 같아 감사의 사례로 자신이 가진 생필품 몇 개를 보낸다..'


대략 이런 내용인 편지에서 삶의 굵은 테두리가 오롯이 전부 보이는 듯하다.


현재 가진 많은 것들을 감사의 표시로 전하고픈 마음.. 좋지 않은 종이에 쓴 한 장의 편지와 자신이 가진 몇 가지 안 되는 것 중 새것이라 명명되는 생필품 몇 조각을 전하는 마음. 그것은 그 어떤 명품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빛나는 모습으로 식당 한 켠 액자에 자랑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민재에게 또 한 가지를 얻었다.

그의 선택으로 인한 가르침.

결코 짜인 시나리오나 스케줄에서 얻는 만족이 전부는 아니구나.. 허름하고 남루하고 실패할만한 경험은 나 혼자 있을 때만 하고자 한 내 마음을 돌아보며 민재가 이제는 '친구'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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