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0대로 평생 살 줄 알았다

20대를 보내보고도

by 마리


내 나이 앞에는 언제나 3자가 붙어 있을 줄 알았다. 서른이 되면서 내가 평생 20대로 살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 깨달음이 30대에도 적용될 수는 없었던 걸까? 20대를 보내며 그렇게 허무하고 슬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20대에 뭐가 그렇게 슬펐나 싶다.) 이번에는 30대를 보내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사실상 한국 나이 (예전에 세던 방식)로 치면 나는 이미 40세이고 친구들은 41세다. 학교를 1년 일찍 간 빠른 년생이라는 걸 방패 삼아 한 살이라도 덜 먹어보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40번째 생일을 맞이해야 한다. 심지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이 먹는다는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와, 진짜 싫다. 정말 싫다. 나이 먹기 싫어! 어릴 적 엄마의 생신 때, 나이가 많이 들었다며 슬퍼하셔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엄마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30대는 아직 젊은 느낌이 들고 무언가를 실패해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40대는 이제 무얼 해도 진중해야 할 것 같고 "그 나이에 새 도전을요...? 벼랑이 가까운데 괜찮으시겠어요...?" 같은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인생의 쓴 맛도 잘 알아야 하고 그 걸 알고도 삼켜야 할 것 같은 숫자의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이다. 30대의 짐도 어깨에 얹혀 있고 아직 그 무게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이제 40대의 짐까지 얹으라니 싫어! 하고 도망가고픈 마음인 것이다.


왜 나이를 먹기 싫은가? 어른이 아니고 어린이, 청소년, 또는 학생이고 싶은가? 아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생 때의 나는 언제나 미래를 꿈꿨다. 성인이 되고 난 뒤 누군가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어? 하고 물어보는 질문에도 나는 항상 20대 또는 30대를 골랐다. 절대 학생 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고 (물론 책임감 있는 소비를 해야 하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야기를 나눌 대상 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어른인 게 좋다. 사람마다 인생은 다른 법이니 학생 때에도 이럴 수 있었던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아니었다.


며칠 전 어린이가 저녁 식사 후의 대화 중에 "엄마는 자기가 어른이라고 생각해?" 하고 물었다. 그렇다, 나는 어른이다. 책임질 대상이 있고 어린이를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야 할 의무가 있으며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게 어른이 아닌가? 20대를 뒤돌아보면 맨땅에 신나게 헤딩했던 경험과 어떻게든 지우고 싶은 실패들, 나 자신의 어리숙함에 매우 부끄러웠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럼 30대는? 조금 나아졌으나 여전히 좌충우돌했던 경험들과 처음 맞닥뜨린 일들에 당황했던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해봤던 일들이랑 비교해서 해보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충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학교 졸업, 취직 활동, 입사, 퇴사, 잦은 국내 이사. 아기와 함께하는 해외 이사와 은행과 함께하는 해외 카드 도용 해결도 해봤다! 이러니까 40대가 가까운 거겠지.


이 모든 것을 겪고 어른이라고 인정하는 게 싫은 게 아니다. 커져가는 숫자가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이제 내가 포함될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작은 숫자가 주는 여유와 반짝임, 가능성을 놓아주고 큰 숫자와 연관되는 사회에서의 뒤처짐을 나 자신이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모든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러한 부정적인 점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여전히 내가 배울 만한 점이 많은 사람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토록 내가 겁내하는, 나이 때문에 사회에 따라가지 못하고 상식과 예의도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생기는 것은 비단 꼭 나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배워야 사람은 발전하는 법이다.(공부가 어려운 것은 일단 제쳐 두자) 반짝이는 가능성도 이제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하고 스스로 놓아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40살이라고 인정하기는 싫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2026년 새해에 내 생일이 찾아와야 진정한 40세가 되는 것이다.


많이들 말하듯이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 그래서 40세가 되기까지 약 반년이 남은 시점, 만 39세의 끝자락에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글을 쓰고, 나이의 앞자리에 4가 붙기 전에 새로운 것을 배워 보고, 어린이의 양육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가오는 40대를 맞이해 보기로 했다. 30대는 정말로 정신이 없는 10년이었다. 지금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팔락팔락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니 어머 30대가 사라졌네, 하고 서 있는 나와 마주쳤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지금의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내 손 안에는 아주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도 아주 많을 것이다. 40대의 끝자락에서 아마 또 나는 이번에는 4의 차례구나, 50세라니 싫어! 를 외치고 있겠지만 그래도 40대도 재미있었다, 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