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정신 차려보니 내가 경단녀?

임신과 출산부터 쉽지 않았다

by 마리


솔직히 고백하건대 출산은 내 인생 계획에 없었다. 결혼은 계획에 있었으나 (참고로 내 MBTI 끝자리는 J다) 막 결혼하고 한창 회사를 다니며 일을 배우던 터라 출산 및 육아는 내 인생 플랜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 몸이 좀 이상한데? 하고 출근 전 아침에 해본 검사 결과가 임신이었다. 이걸 기뻐해야 해 말아야 해. 남편과 둘이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다 출근했다. 확인 차 가 본 병원에서도 임신이 맞다고 했다. 임신이라고요? 제가요? 제가 임신을 해서 10달 후에는 아기를 낳아서 키워야 한다고요? 저는 커피도 회도 초콜릿도 좋아하는데 이제 임신이라 이런 걸 다 먹을 수 없다고요? 내 몸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거죠?


커피고 회고 초콜릿이고 다 제쳐두고 임신 초기 입덧이 진짜 심했다. 하지만 심한 입덧을 겪어 본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출산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덧 얘기만 하라고 해도 끝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초기에만 좀 심한 편이었고 그 뒤로는 그다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임신 초기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입덧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 때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이 쌀국수였다. 가끔 다른 음식이 생각나서 남편이 뛰어가서 사다 줘도,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아서 요리를 해도 한 입 먹고 으악 못 먹겠다 하고 남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아까운 음식... 쌀국수도 그나마 국물을 조금 넘길 수 있는 정도였는데 덕분에 매일같이 날짜를 세며 오늘은 몇 주차고 며칠만 조금 더 지나면 이 입덧이 가라앉을 거야를 주문같이 되뇌었다.


입덧뿐만이 아니라 졸음은 왜 그렇게 쏟아지는지 원래도 잠이 많은 인간인데 정말로 끝도 없이 잠을 잤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오후에도 졸렸다. 점심시간에 잠깐 자고 일어나도 소용이 없었고 집중해서 일해야 할 시간에 끝도 없이 잠이 몰려왔다. 차라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면 덜 졸렸을까? 하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하는 업무가 주였고 졸릴 때마다 일어나는 것도 너무 자주 일어나야 하다 보니 눈치가 보였다.


간신히 졸음을 물리치며 일하고 퇴근할 때는 버스를 탔는데 멀미가 너무 심하게 났기 때문에 몇 정거장 가지 못하고 내려야 했다. (안돼 내 자리...) 하지만 집에는 가야 하고 걸어갈 수는 없으니 택시를 탔다. 입덧을 하고 너무 졸리고 멀미에 시달리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임신 초기를 견디지 못하고 후임을 뽑아놓고 퇴사하게 되는데 이때 결정을 10년 후의 나는 후회하게 된다. 아니 출산을 하고 나서 몸이 아무리 아파도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취직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조금이라도 경력 단절 기간이 있으면 매우 합당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다시 취직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아기를 키우다가 몇 년이 지나가면 정말로 취직할 수 없어진다. 그러니 이 글을 혹시라도 읽으시는 임신 전,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회사를 어떻게 하지 고민하시는 여러분, 제발 회사를 계속 다니십시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입덧도 멀미도 졸림도 견디고 나면 10달 후에는 출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채 임신 열 달이 되기 전부터 출산이 정말 무서웠는데 그도 그럴게 나는 겁과 엄살이 많은 인간이다. 그리고 굳이 엄살을 부리지 않아도 이 세상 모두가 출산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올수록 나는 무서움에 떨며 출산 가방을 잘 챙겼나 확인하곤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화창한 주말 아침 아침을 뭘 먹을까 고민하며 일어나던 나는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가야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주사 바늘과 내진에 시달리다 출산에 실패하고 다음날에야 제왕 절개 직전에 아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낳을 때 너무 힘들면 아기 얼굴도 생각이 안 난다더니 정말이더라. 임신도 힘들고 출산도 힘들지만 그 뒤는 조리원이 지나가고 나면 그다음은 육아의 실전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10년이 지나가 있는 것이다.


임신을 고민하시고 계신가요? 혹시 최소 2년간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수면 시간을 비롯한 개인 시간을 희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세워놓은 하루든 일주일이든 일 년 치든 계획 및 규칙이 흐트러져도 크게 상관이 없으며 친구 관계가 끊길 위험에 처하고 집은 폭탄 맞은 상태가 되어도 괜찮을지 여러 번 깊게 생각해 보십시오.


내 mbti 끝자리가 J인 것을 인정이라도 하듯 나는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고 한번 결정한 것을 바꾸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함께 산지 어언 10년. 이제는 수면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고 개인 시간도 약간은 생겼으며 계획은 대충 짜놓고 그때그때 바꾸고 시간 여유를 두고 헐렁하게 다니는 것을 배웠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공황장애를 얻었다. 그러니 여러분, 출산과 육아보다 항상 자기 자신을 우선에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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