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는 줄 알았는데 공황 장애

대학원에서도 공황장애는 안 왔는데

by 마리


전날과 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아기를 재우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었다. 드디어 오늘의 할 일이 다 끝났구나 싶어 신나는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 잠시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잠시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기를 들이쉬어도 숨이 모자랐다. 곧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이러다가 금방 죽겠구나 싶어 옆에 있던 남편에게 곧 죽을 것 같으니 119를 불러달라고 했다. 남편은 깜짝 놀라 구급차를 불렀다. 나는 금방 달려온 앰뷸런스에 올라 응급실로 향했고 남편은 집에서 자는 아기 때문에 같이 오지 못했다. 한밤중에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응급실에서 숨을 못 쉬겠다고 울자 산소포화도 측정기와 비닐봉지가 쥐어졌다. 공황 발작이라고 했다.


나는 임신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임신 기간 동안 멀미와 졸음과 입덧에 시달리던 터라 쉴 때는 마냥 좋았다. 하지만 출산 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기는 양육자의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자신의 불편이 우선이다. 갓난아기는 3시간마다 먹어야 한다. 준비하고 먹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2시간 간격이고 이건 밤에도 동일하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불편한 점이 있으면 냅다 운다. 요즘 세상에는 울음소리를 번역해 주는 기계도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어린이는 순한 아기였지만 내 멘탈을 잘 관리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였다. 일단 나는 잠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아기는 2시간마다 일어나서 먹어야 하며 먹다가 배가 좀 부르다 싶으면 자버린다. 하지만 양껏 먹지 않으면 금방 일어나서 또 배가 고프다고 우니까 한 번 먹일 때 아기를 최대한 깨워서 먹여야 한다. 나도 졸려 죽을 지경인데 아기를 깨워서 달래 가며 먹이고 사용한 젖병을 씻어서 소독기에 넣어야 한다. 분유? 자다 일어나 밤에 타다 보면 내가 방금 몇 스푼을 넣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고 물 온도를 맞추지 못해서 좀 뜨겁다 싶으면 아기가 다시 운다. 밤타임의 수유는 험난하다. 부모 둘 중 한 명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럼 낮시간은 좀 나은가? 아니다. 밤에 못 잤으니 낮에도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아기를 2시간마다 먹이고 트림시키고 낮잠을 재우고 씻기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애를 먹였으면 나도 먹어야 한다. 이걸 하다 보면 집은 짐승의 동굴이고 사람은 인간의 몰골이 아니게 된다.


출근이 낫다,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나는 양육에 양 쪽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좀비 같은 몰골로 애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에만 전념하다 100일이 지나면 아기의 밤 수면시간이 늘어나는데 (이 또한 아기마다 다르다) 이 때까지는 마치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수행하는 곰이다. 이때까지도 사실 내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체감상 한 6개월 정도는 지나야 그래도 조금 원래 몸(임신 중 찐 살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으로 돌아왔는데 배 속에 아기가 없는 몸은 어색했지만 온전한 소유권을 돌려받은 것이 매우 기뻤다. 내 몸은 돌려받았으나 외출은 이제 또 다른 문제였다. 일단 아기와 외출하면 짐이 한 궤짝이다. 기저귀, 분유, 젖병, 여벌 옷, 장난감 등 몇몇 개만 나열해도 가방이 터져나갈 지경이 된다. 혼자서는 나가기도 버겁다. 외출이 아니라 여행이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외출도 줄어들게 되었다.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한 얼굴과 폭탄을 맞은 것 같은 집구석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기의 콜라보는 답은 외동이라는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출산으로부터 약 1년 반 후에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아무런 예고 없이 한밤중에 공황 발작 진단을 받았다. 발작이 계속되면 공황 장애가 된다고 했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라며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쓰러져 잤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잠이 쏟아졌다. 어차피 아기도 낮잠을 많이 자는 시기였으니 그 때마다 나도 옆에서 쓰러져 잤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이제 가끔 아기도 남편과 시댁에 보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누워서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해 보이고 바깥세상에는 예쁘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나는 어두운 집 안에 누워서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하루는 어깨가 아팠다. 하루는 머리가 아프고, 그다음 날은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무리 크게 숨을 쉬어도 산소가 모자라는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심장내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내과, 유방외과, 산부인과, 건강검진센터. 모두 내가 정상이라고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거짓말 같았다. 나는 이렇게 숨쉬기가 힘들고 답답하고 온몸이 아픈데 문제가 있는 곳이 없다니.


결국에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병원을 다 들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병원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매일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심리상담을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부작용에 시달리고 무기력하고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려도 죽지는 않았다. 하루하루 버텼다. 아기는 두 돌을 맞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행히도 잘 적응해 주어 나에게는 약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바깥으로 조금씩 더 나가게 되고 아기를 데리고 산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는 병원 치료를 받고 운동을 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발작이 일어났던 밤이 떠올라 무서웠다. 일부터 비타민 D를 챙겨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쩌다 밤에 깨어나면 잠을 다시 청하지 못하고 책을 읽거나 다른 공황 장애를 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의외로 많았다. 심리 상담을 해주던 선생님은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이 영문을 모르겠는 병을 앓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데서 안도했다.


공황은 하루 아침에 찾아온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바다를 한 번 찾아가서 빛나는 물결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에 몸 어디에 찾아올지 모르는 아픔에 견디고, 낮에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다음 순간에 죽지 않을 거라고 되뇌이는 저녁을 지나 서서히 옅어져 갔다. 나는 특히 밤에 불안이 더 심해지는 편이었는데 이 때 남편 덕분에 햇빛이 강하고 낮시간이 길었던 지역으로 이사를 간 것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 곳에서 사는 2년 동안 불안과 숨쉬기가 크게 나아져 견딜 만 했다. 아기도 많이 자라 이제는 외출도 한결 편해져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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