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은 무엇인가
나는 통번역사다. 아니, 전직 통번역사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까? 나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몇몇 회사에서 한국어-영어 통역과 번역을 맡아 근무했다. 현재는 간간히 논문 교정과 영문 서류 리뷰를 하지만 회사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맡아한 지는 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제 나 자신을 칭할 때 통번역사라고 말해도 될까 항상 조금 부끄럽고 고민스럽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자랑스럽게 말한다, 저는 통번역사입니다.
나는 언제나 활자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얀 종이 위 글자들이 늘어서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이번에는 무슨 내용일까 기대하며 새 책을 펼쳤다. 좋아하는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몇 번이고 읽었다. 부모님이 사다 주신 전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들을 골라두었다. 내 미래가 깜깜한 날 읽는 책도, 마음이 즐거운 날 읽는 책도 따로 있었다. 쓰인 활자를 따라가는 것도, 엔딩 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내 마음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언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통번역사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다음에는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생각대로 되지 않듯이 나의 대학교 전공은 심리학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는 비슷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에서야 통번역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통번역사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임신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출산 후에는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면 (직업을 막론하고) 이때 아기를 봐줄 어린이집을 빨리 알아봐 두는 것이 좋겠다.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어린이집도 대기를 해야 했으며 국공립이라면 더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는 것이 좋다 했으니 (그때도 저출생이라고 말하던 시대였는데도 그랬다) 국공립은 물론 민간 어린이집도 들어가기 힘들었다. 좋다고 소문난 어린이집이라면 특히 그랬다. 나는 운 좋게 아기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어서 공황 치료에 도움이 되었으나 금방 반년만에 다른 나라로 잠시 나가게 되었다. 이때 가게 된 나라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가족 전담 통번역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사업무를 비롯해 은행과 부동산과 기타 각종 서류를 처리하고 내용을 듣고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하는 일들이 익숙했다. 거주 중 카드 해킹을 당해 각종 은행과 카드 회사와 가게들에 전화를 돌리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통번역사다. 카드가 모두 해킹을 당해 정지되어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돈이 하나도 없게 된 통번역사의 울분을 받아보아라. 수많은 은행과 카드사를 상대로 내 돈을 되찾기 위해 영어를 써야 했다. 마치 실전 통번역 시험 같았다. 통번역사 교육 체험 같은 기분으로 보냈던 몇 년이었다. 그 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락다운(집 밖 몇 km 반경이상 외출 금지)을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 기간이 밖으로 나가 영어를 쓰고 일하는 기분을 경험하게 해 공황을 치료하는 면에서도 도움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 보내기 시작한 어린이의 유치원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수로 인해 휴원이 잦았으며 그럴 때마다 내가 어린이를 돌봐야 하는데 취직 활동이라니 여전히 요원했다. 그리고 귀국해 오랜만에 진행한 번역도 결과물이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역시 번역은 (물론 통역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약 2년 정도가 지났고 코로나는 점점 그 위세가 줄어드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공교롭게도 어린이가 초등학교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유치원은 한번 보내두면 적어도 오후 3-4시에 하원하는데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을 위해 저녁 6-7시까지 하는 곳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칼같이 12시 30분이 하교 시간이었다. 물론 방과 후 수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수업을 신청하면 정규 교과 후에 이어서 들을 수 있으나 1-2시간에 불과하고 결국 1시 반 또는 2시쯤에는 하교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들이 돌아올 즈음에 집에 누군가 있거나 학교에 데리러 가거나 아니면 결국 다음 학원으로 가는 선택지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내 어린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을 뿐인데 (내 성격상 집에 누가 들어와 있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게 통번역에서 점점 멀어져 내 커리어를 끝내는 길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숨을 못 쉴 것 같고 몸 어딘가가 항상 아프고 심장이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아도 이걸 계속 참으면서 죽을 것 같아도 일단 살아 있으려고 애썼다. 결국 나는 살아 있고, 여태까지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앞으로 아예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