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통번역사가 되고 싶으세요?
나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하지만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지 않고 각 언어 학과를 졸업하고 통역사나 번역사로 활동하는 것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사실 다른 직업과 비슷하게 통번역사가 되는 데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부터 통번역사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초반까지는 이과생의 길을 걸었다.
의대 진학은 아버지의 강경한 추천 때문이었다.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는 게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피도 무서웠고 아픈 사람들을 보는 것도 무서웠다. 내가 아픈 것도 무서운데 다른 아픈 사람을 고치라니. 피를 보고도 기절하면 안 된다니. 저는 공포 영화도 고어 영화도 못 보는 인간이라고요. 그런 인간이 의대를 가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니다, 못 버틴다. 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몸을 구성하는 뼈를 외우거나 화학식을 푸는 것은 잘했지만 나 자신 외 다른 인간의 신체를 다룬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아픈 사람의 몸을 치료하면서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니 나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차라리 몸보다는 정신이 나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다니 의대보다 심리학이 훨씬 매력 있어 보였다. 그래서 심리학으로의 전과를 선택했고 범죄 심리학(범죄자들의 심리나 동기 등)이나 마케팅에서 심리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등을 배웠다. 심리 실험결과를 위해 배웠던 통계학은 너무나 어려웠으나 졸업을 위해서는 필수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심리학 전공으로 학교를 졸업한 뒤 택할 수 있는 길은 심리학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두 가지였다. 어느 한 가지를 결정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두 길을 다 가보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둘 다 잘 되지 않았다. 취직도 되지 않고 대학원도 합격하지 못했던 나에게 법대나 약대를 가라는 충고 아닌 조언들이 쏟아졌는데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건 통번역 대학원이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던 나에게 통역과 번역은 그냥 생활 스킬 같은 거였다. 가족들이 뭔가 말 전달이 필요하면 내가 해 주고, 서류 작성이 필요하면 그때도 내가 했다. 어차피 매일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통역과 번역은 내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취직은 요원해 보이고 심리학 대학원 합격도 멀어 보이고 대학원에 가더라도 박사까지 해야만 한다는 소리들이 들리는 와중 석사만 일단 졸업해도 되는 (그때는 통번역 대학원 석사 졸업도 굉장히 힘든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통번역 대학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나 말이 있다니! 그걸 정확하고 아름답게 옮기기만 하면 된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마침 통번역 대학원에서도 신입생을 모집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몇 군데 원서를 넣었고 심사 1차를 통과한 학교에 면접과 통역 시험을 보러 갔다. 통역 부스란 것을 들어가 보는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어폰을 꽂은 귀 한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숨이 넘어갈세라 가쁘게 동시통역을 하고 나오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스 안이 내가 있을 자리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정확하게 알려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을 했던 학교에 합격해 다음 해에 입학시험을 보았던 바로 그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통번역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대부분 통번역 학원을 다니다가 입학시험을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원 수업을 듣고 수강생들끼리 스터디를 짜서 통역 또는 번역 연습을 하다가 학교를 들어오는 경우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어떻게 스터디를 진행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학원을 거치지 않고 학교에 진학한 케이스라 처음에 스터디란 무엇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몰랐으나 다른 동기들의 도움으로 배워서 할 수 있었다. 수업 후나 사이사이에 학생들끼리 하는 스터디도 결국 실제로 이루어지는 통역같이 하기 때문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다. 결국 번역과 통역은 이미 알고 있는 게 많을수록 유리하다. 주제별로 단어장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것도 좋고 한국어와 기타 언어로 된 뉴스를 듣거나 읽는 것도 좋고 그 외 전문으로 하고 싶은 분야 (경제/금융/사회/마케팅/전자 등등)를 공부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음에 할 통역이나 번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보니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이과 과목은 물론 대학교 때 배웠던 다른 과목들도 결국 번역이나 통역 때 크게 도움이 되었다.
왜 통번역사가 되고 싶으세요? 통번역사가 되고 싶은데 고민 중이라면 이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