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고문과 지원서 사이에서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by 마리


어린이가 조금 자라서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고 코로나의 위세도 조금 수그러 들었을 무렵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았다. 대부분의 공고문 제목에는 통번역사 채용 공고라고 명시되지 않고 영문에디터로 표기된다. 이런 자리는 기간직이고 보통 2년, 그리고 그 후 재계약을 한다. 총 4년을 일하면 다른 자리를 찾아야 했다. 정규직도 가뭄에 콩 나듯 있긴 하나 들어가기 매우 힘들고 공고도 거의 나지 않는다. (지금은 정규직 자리도 좀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고문의 자격요건은 통번역 대학원 학위와 경력인데, 정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통번역사는 보통 자신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금융, AI, 의학 등이 많이 공고나 났던 분야인데 나의 주력 분야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일한 기간보다 육아로 인해 쉰 기간이 길어졌다. 공고문을 보며 일단 지원서를 써볼까 고민하다 인터넷 창을 껐다.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이는 아직도 어렸고 손이 많이 갔다. 남편은 바빠서 육아에 전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웠으며 조부모님도 유치원 하원과 케어를 해주실 수는 없었다. 나는 풀타임으로 일할 자신이 없었다. 어린이를 봐주실 분을 구하면 되겠지만 마음에 드는 분을 찾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다른 엄마들한테 숱하게 들어왔다. 면접도 보아야 하고 몇 명을 만나 면접을 보고 나서 뽑은 분도 잘 맞는 부분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예민한 성격이다. 나 자신도 어린이를 다른 분의 손에 맡겨도 내가 과연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론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뿐인데 파트타임 통번역사란 정규직보다 더 찾기 힘든 자리고 이렇게 되면 결국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한 회사 내에서 줄곧 일하던 인하우스 통번역사였던 나에게 인맥과 네트워크가 총동원되어야 하는 프리랜서는 더욱더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이 내리막길을 탔다.


그래도 용기를 주섬주섬 끌어모아 이력서를 작성해서 몇 통역과 번역 에이전시에 이메일을 보내 보았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풀타임 자리에 몇 군데 내 본 이력서에도 응답은 없었다. 알림 없는 텅 빈 이메일함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입덧을 하더라도, 졸리고 힘들었어도 그만두지 말았어야 하는구나. 뻥 뚫린 내 커리어를 메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어린이를 데리러 갔다.


하원한 어린이는 나와 다른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즐겁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몇 시간을 놀았다. 저녁을 먹이고 어린이를 씻기고 재우면서 그때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어떠한 결심들은 몇 십 년 앞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는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 결심했으면 좋았을 걸.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겠지.


그 후로도 나는 지원서를 넣었다. 공고문을 살펴보고 이력서를 수정했다. 에이전시를 알아보고 온라인 잡사이트에 내 경력을 올려 두었다. 가끔 생각한다. 여기까지인가 보다. 가보지 못한 길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받아들이려면 많은 날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이 쪽 문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지만 다른 쪽 문을 찾아보자. 갈 수 있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다른 길이 또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쪽 문을 찾으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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