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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Jun 12. 2020

디지털 절교

언팔로우의 기쁨

이제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얻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면을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상황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혼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그동안 해왔던 외부활동을 대체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소통을 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 짐에 따라 언제부터인가 오프라인의 관계 못지않게 온라인에서의 관계도 중요하게 되었고 온라인에서의 삶이 오프라인의 그것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나는 최근에 많은 온라인에서의 관계를 정리했다. 관계를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대단한 행동을 한 건 아니고 내가 즐겨 찾던 블로거들을 언팔로우하고 즐겨 찾던 유튜버들을 찾아가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그들의 소식을 전해 듣지 않는 것뿐이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수많은 팔로워 중 한 명이 떨어져 나간 정도고 지금도 누군가는 그를 팔로우하고 있을 테니 그야말로 신경도 쓰이지 않고 눈치챌 수도 없을 차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스스로의 정신적 안녕을 위해서 몇몇을 언팔로우하고 나서 훨씬 더 큰 행복감과 불편한 정보를 더 빠르게 피할 수 있어 여유시간을 갖게 되니 왜 진작 이러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또는 언팔로우에 대해  죄책감이나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계기는 즐겨 찾던 블로거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팔로잉을 했던 그는 수십  전에 한국에서 건너와 상당히 오랜 시간 미국에 거주한 미국 시민권자다. 아마도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고 정년퇴직을 기다리면서 나름 노년을 즐기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안정적이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국말을 쓰는 미국인이다. 그는 수년간 거의 매일 블로그에 본인의 생각을 올려서 수많은(?) 독자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고  양은 실로 방대하고 꽤나 쓸모 있어 보인다. 실제 미국 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있고 정치, 경제, 생활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울  있기도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부터 매우 자주 블로그를 방문하여 정보를 얻곤 했다. 본인이 스스로 매우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생각들은 그저 그런 흔한 꼰대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횟수가 잦아진  내가 그를 언팔로우하게  계기다. 더욱 언팔로우 시기를 앞당긴 것은 그가 종종 올리는 미국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였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소위 말하는 쿨병에 걸린 건지, 아니면 세상에 본인을 빼고는  못마땅한 건지, 이제는  이상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아서 더더욱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미국 칭찬, 한국 비판 일색이다.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한국을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는 글들은  이상 즐거움이 아니었고 때로는 그의 논리 전개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취하는지   없지만 태평양 건너에서 본인이 즐겨 찾는 언론사의 홈페이지와 TV 등으로만 접하는 적당히 포장되고 때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상당 부분 왜곡된 정보에서  얻을  있는가 말이다. 더 웃긴건 동조하는 댓글에는 점잖게 대댓글을 달아서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조금 다른 견해를 밝히면-사실 다른 견해를 밝힐만한 사람은 이미 떠나서 찾아보기 어려운건지도 모른다-개인블로그에서 뭐하는거냐, 견해를 밝히려면 본인의 블로그에서 의견개진을 하라는데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알수 없을 지경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그의 통찰력을 찬양하는 댓글 일색이  댓글의 수준은 건전한 비판이 아닌 쌍욕과 조롱을 잘 버무려서 정부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읽다보면 구역질까지 나는 댓글들이다. 댓글까지 작성자 쓰는건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입에 담기도 힘든 수준의 댓글을 블로그의 주인으로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런 댓글에 친절하게 대댓글까지 달아주는 은 방관과 동조라고 밖에 할수 없는데 이게 과연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개진의 방법으로 봐야 할까. 이미 나는 그를 팔로잉하지 않지만 그가 제발  이상 한글로 블로깅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그의 소망대로 정년퇴직 후에 여행이나 하면서 곱게 늙어갔으면 한다.  같지도 않은 블로그는  이상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최근의 다른 경험 하나는 유튜브 채널인데 재택근무 체제로 바뀌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요리 유튜브를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소위 업소용 레시피를 알려준다는 그는 별칭까지 생기면서 수많은 팔로워들을 거느리고 한국은 물론 해외에 있는 한국사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고 그의 레시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가 극우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유저라는 논란이 일었고 본인도 인정을 하면서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요리와 사상이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나와 사고가 다르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나와 판이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유튜브를 굳이 즐겨찾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 날로 구독을 취소했다. 자주 방문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의지하진 않았던 터라 구독을 취소하고도 아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고 또 다른 건강한 레시피로 여전히 내 식생활은 즐겁다.  


한참 대학을 다니던 시절 졸업한 후에 뭐가 될지 감히 상상도 못 할 시절, 시간이 너무너무 많을 때나 한 번쯤 상상했던 해외 거주가 내게 현실이 된 지 만으로 4년이 훌쩍 넘었는데 무거운 이민가방 2개를 부치고 가족들과 인사할 때도 그다지 큰 허전함과 상실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니 밀려오는 두려움과 JFK에 이민가방을 들고 내렸을 때 황량함, 다행히 홀로 남겨진 느낌을 느끼기도 전에 나를 마중 나온 아내와의 만남. 그게 내가 미국에서 새롭게 살아보려고 왔을 때의 기억이다. 그리고 아내가 나를 마중 나왔다는 게 참으로 다행인 게 이민을 가게 되면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과 같은 직업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난 아내가 마중 나왔으니 적어도(?) 아내가 종사하는 전문직에 몸담을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삼천포에서 돌아와 처음 무엇을 하게 되면 먼저 걸어온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고 실제로 많이들 그렇게 하고 때로는 연락도 취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같은 언어와 같은 배경,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게 되고 흔히들 말하는 블로거, 유튜버 등을 찾아 따라 하게 된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 자주 들러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게 해 준 블로거지만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내 정신건강을 위해 더 이상 그를 팔로잉하지 않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지' 라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여전히 팔로잉을 끊지 않고 조금 불편한 글들, 조금 불편한 유튜브들을 봐왔는데 이런 찌꺼기들이 정보도(정보가 이동하는 통로)에 쌓이고 쌓여서 결석이 되어 악취를 풍기게 된다. 지금 당신의 인터넷 이웃은 당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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