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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Jun 16. 2020

경계인으로 살기

별거아닌 미국살이

오래전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일이라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얘기해야겠지만 사실 내 집이 아닌,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닌 곳에서 불편하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이렇게 멀리 나와서 살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회상컨데 시쳇말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미국행 비행기 티켓이 들려져 있었고 뭔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다 닦지 않고 나온 그 느낌으로 인천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나름 신나는 마음 한켠에는 이게 여행이 아니고 그 곳에 살기 위해 가는건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일지라도 나이를 먹다보면 점점 적응되어 간다는 말처럼 이미 한국에서 직장생활의 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지낸 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움, 이런 편리함과 안락함을 뒤로하고 가기엔 그동안 누렸던 것들이 너무 괜찮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어서 사실은 나도 모르게 출국날짜를 조금씩, 그리고 가급적 늦게 가려고 했었던 내 비겁함이 그때의 내 속에 혼재되어 있어 아마 갈팡질팡 혼란스러운 나를 한 방에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가급적 빨리 한국을 떠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즐겁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1주일 또는 2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던 출장과는 다르게 오전에 도착한 JFK공항은 예전에 내가 느낀 그 곳이 아니었다. 불과 5개월전에 출장 차 왔던 곳이니 바뀐 것은 내 마음 뿐일텐데 전에는 돈을 펑펑 쓰고 갈 관광객으로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다면 그때, 그 곳의 공기는 그야말로 단단히 정신차리지 않으면 나를 잡아삼킬 기세로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이방인으로, 그것도 남의 -내 나라가 아니니까 아마 영원히 '남'이라고 부르겠지만- 나라에서 제법 괜찮게 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미국으로 오기 직전까지도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나를 걱정하고 나보다 훨씬 잘 나가는 사람들의 미국이민 실패기를 반복적으로 들먹이면서 비행기표도 끊었고 아내는 이미 미국에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내게 다시 생각해 볼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내가 말하는 "괜찮게" 산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라 정의하긴 어렵고 굳이 정의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조금 말해보면 한국에서 내가 지내왔던 환경과 유사한 환경에서 살 수 있고 크게 만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만을 가질만한 환경도 아닌 정도면-점점 더 정의가 애매모호해진다는거 알지만- 괜찮다고 말할수 있겠다. 내가 한국에서 얼마를 벌었고 직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숫자까지 들먹이는 꼰대짓은 하지 않겠지만 그냥 보통의 사람처럼 즐겁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왔다. 사실 경제적인 '괜찮음'은 시간을 투자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한다는 전제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미국이라는 곳은 환경에 따라서는 시간이 지나고 노력해도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고 또 한번 직장을 잡고 대개 그렇듯이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되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 있는 기회는 찾기 어렵다. 한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이 그렇게 정착하고 모국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오랜 시간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굳어버린 사고방식과 내 생각보다 먼저 편안함을 찾는 몸의 관성과 습관들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껍질을 깨고 나가려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존했고 스스로 더 자랑스럽게 성장한 나를 바라보고 웃기지만 아주 조금 흐뭇하다. 앞으로 5년 후에 또다시 성장한 나를 바라보면서 지난 5년을 다시 되돌아보고 있으리라. 미국 온 지 얼마 안된 이민새내기로서 나를 그저 남들 사는 만큼 적당히 살수 있게 만들어준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특별할게 없는 미국'이라는 생각은 나를 훨씬 빨리 이 곳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미국은 영어를 언어로 사용한다는것 외에는 그다지 특별할게 없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삼시세끼 밥을 걱정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는 그야말로 한국의 '김서방'이 살아가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겠다. 영어가 유일한 다른 점이지만 언어라는 것이 거의 미국생활의 전부인데 이렇게 단순하게 취급해도 되냐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어서 영어로 소통이 원활한 사람은 전혀 아닌, 공공 장소에서 영어로 말하면 아, 저 사람 한국사람이구나 하고 느낄만큼의 후줄근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한다고 미리 말해둔다. 아무것도 없이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매일 영어 사용하면서 직장생활하는 나를 보면 어느 정도 노력하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영어실력까지는 다다를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는 오랜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미국사람들도 특별할게 없는 보통의 한국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매우 스마트한 사람들 같지만 매우 단순하고-단순하다는 말은 꼭 나쁜 뜻은 아니다- 대개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본인의 역할을 해나가기 때문에 많은 미국사람들은 분업에 특화되어 본인의 역할을 벗어난 것들은 대개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 상황에서 일반적인 어떤 문의를 하면 'I can't help you because it is not my responsibility. I am sorry.'라는 대답 또는 회신을 자주 받고 그나마 나는 잘 모르겠으니 다른 관계 부서나 담당자로 연결해 주겠다는 사람은 매우 친절한 사람 축에 속한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의외로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정보는 없고 단편적인 정보 여러가지만 가지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미국에 오기 전 '너무 걱정마세요. 미국애들도 별거 아니예요.'라는 내 치기어린 도발에 '아냐, 걔들도 다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거야'라고 굳이 내 패기를 억눌러준 장인어른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여전히 내 생각은 재판까지 가서도 끝끝내 지동설이라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갈릴레오처럼 변함이 없다. 나는 사람을 만날때 상대방은 풍부한 경험과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나도 상대방 못지않은 경험과 상대방이 갖지 못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만난다. 상대방은 충분히 존중하되 너무 지나치게 우러러보거나 겁먹지 말고 대등하게 대화하면 나도 당당해지고 상대방도 나를 존중해준다. 


또 하나는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 습관은 세계 어디를 가도 정신적 평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장담할순 없지만 적어도 나를 포함해 나와 이웃해 있는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차는 잘 굴러가면 그만이고 집은 비바람과 눈을 막아주면 그만이니 좋아도 크게 자랑하지 않고 나빠도 본인의 형편이 그러하니 크게 불평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냥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스스로 행복해 지는 방법이다. 누군가와 스스로를 비교하거나 누군가와 본인의 가족을 비교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 만큼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 나는 내 이웃과 출퇴근하면서 마주치면 가끔 안부를 묻고 그리고 안부를 자주 묻다보면 집으로 불러서 또는 내 이웃이 나를 그들의 집으로 불러서 간단히 음료 한잔을 하기도 하고 요긴한 생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를 두지만 역시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눈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들 누군가가 나보다 잘 사는구나, 그들 누군가보다 내가 더 잘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서로 비교하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순위 또는 우위를 결정하려는 행동이야 말로 매우 한국적인 악습이고 그것은 장소가 미국이든 한국이든 삶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 글을 볼 리도 없고 한글을 읽지도 못하지만 내가 이 곳에 집을 사서 이사왔을때 백인들 천지인 동네에 갑자기 뚝 떨어진, 영어조차 어눌한 낯선 내게 "Welcome"이라고 인사해주고 샴페인 한 병을 선물하는 걸 주저하지 않은 이웃 Michelle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그리고 샴페인을 건네주는 그녀에게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내게 '너가 살 집에 살았던 돌아가신 "Norman"이라는 영감님도 20년쯤 전 내가 이 곳에 왔을때 그렇게 따뜻하게 환영해 줬고 나도 내 이웃에게 그분의 따뜻함을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던 그녀의 대답도 나같은 'Fresh off the boat'에겐 더할 나위없는 친절함이었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나는 돈을 쓰고 그에 상응하는, 또는 가장 효율적인 만족감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열심히 벌어서 가치있게 쓰자'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1년에 한번씩 해외여행을 하고 또 1년에 몇 차례 미국 내에 많은 곳을 여행하다보면 돈을 너무 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었다. 하지만 2020년 2월부터, 아니 그 전부터 어디에선가 시작됐겠지만 현재 지구전체를 옥죄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을 몇 개월 겪다보니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최근 2-3년 동안 재미있게 다녀온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다녀온 스위스여행과 거기서 잊을수 없었던 트레킹, 재작년에 9월이었지만 10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 속에서 다녀온 캐년서클 일주, 그리고 연이어 다녀온 샌프란시스코와 요새미티 국립공원은 이제는 언제 갈수 있을지 기약도 할수 없는 그저 '그림의 떡'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나는 이미 다녀왔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돈을 가치있게 써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줄수 있다면 기꺼이 써보길 권한다. 자루가 계속 차있으면 더 들어갈 자리가 없고 자루를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고 채우고 싶은 욕망도 생기는 법. 나는 여행에서 큰 만족감을 얻어서 가급적이면 여행에 돈을 쓰고 싶은데 혹자가 젊을 때 열심히 돈벌고 나이들어서 여행다니면 안되느냐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이유는 직접 여행을 가보면 더 잘 느낄수 있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여행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을 즐길 나이가 있고 트레킹을 즐길 나이가 있으며 자동차여행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나이가 있고 크루즈여행에 매력을 느낄 나이가 따로 있다. 20대, 30대에 아등바등 300, 400만원 모아서 먹는것도 아껴가면서 여기저기 안가본데 없이 다녀온 여행은 은퇴한 누군가는 몇 천만원을 줘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된다. 이미 머리가 히끗한 지긋한 어르신들이 그랜드캐년에 가서 어마어마하고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하지만 캐년 속으로 내려가서 트레킹 코스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일면 이해가 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해서 돈을 많이 저축하고 노후를 준비할수 있는 30대, 40대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돈을 많이 쓰고 그 돈을 여행에 할애할 수 있는 시기라는게 내 생각이다. 젊은 시절의 감성적인 경험들도 또 하나의 노후준비라는 말같지 않은 내 주장에 스스로 변론을 잠깐 하자면 우리네 부모님들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거기 놀러갔어야 했는데 못가서 아쉽네'하는 한탄섞인 얘기보다는 '15년 전인가 너희 아버지랑 다녀온 호주여행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구나', '5년전 우리 막둥이랑 오키나와 갔을때 먹었던 스테이크랑 소바는 참 맛있었는데 말이야' 하는 얘기가 훨씬 듣기 좋은 이유다. 말이 길어졌는데 요점만 간단히 줄이자면 '나이먹고 행복감을 느끼고 후회할 일들을 줄이는데 적당히 돈을 써보자' 정도 되겠다. 그렇다. 나도 지금 Retirement Risk Management, 노후위험관리중이다.

 

사실 모든게 돈과 직결되는 얘기가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사실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돈'은 언제나 어디서나 필요하고 가장 'Hot'한 issue이자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톡 까놓고 얘기하기를 가장 꺼리는 주제라는 점이다. 같은 회사 옆자리 동료의 급여도 얼마인지 알 수 없고 월급 얼마냐? 연봉이 어떻게 되냐? 하는 질문이 가장 무례하고 저급한 질문으로 취급되는 것은 어쩌면 서로 모르는게 또 다른 분란의 가능성도 차단하고 모르는게 약이듯 각자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뻔한 말은 누가 못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돈은 좇기 시작하면 잡힐듯 잡힐듯 멀어지지만 돈에 초연해지면 어느 샌가 돈은 내 곁에 와있고 손을 뻗으면 잡을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돈은 본인이 적절한 만족감을 주는 만큼 벌 때가 가장 좋고 더 많이 벌기 시작하면 돈에 묶여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진다. 월스트리트에서 20만불 벌면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아침저녁으로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 사는 삶보다 한적한 시골동네에서 적당히 먹고살만큼만 벌어서 여유롭게 가족들과 즐겁게 사는걸 원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이런 삶을 갈망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는 이유는 어떤 이에게는 더이상 "Money talks"라는 명제는 참이 아닌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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