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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Jun 20. 2020

단골집 없는 삶

골고루 애정하는 방법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단골집없이 살아왔다는걸 꽤 뿌듯하게 생각한다. 

아마 작년 연말 쯤이었던것 같은데 우연찮게 맨해튼의 코리아타운을 지나면서 전에 즐겨찾던 중식당 간판이 없어진걸 보고 문을 닫았다는걸 알게 되었다. 즐겨찾았다고 하지만 그저 두어달에 한번, 일년에는 서너번 가는 곳이라 단골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갈때마다 꽤 만족하는 집이라 한국에서 미국 동부로 손님이 찾아올 때나 출장으로 아는 사람이 올 때, 또는 중식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날때, 그리고 아내와 중식을 먹고 싶을때 종종 가던 곳인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여기저기서 들었던 말로는 뉴욕시 위생청에서 받은 위생등급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예민한 한국사람들은 가기를 꺼린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혹시 DSNY(The City of New York Department of Sanitation)로부터 위생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영업정지 같은걸 당하고 홧김에 문을 닫아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구글에 검색을 해보면 ‘Permanently closed’라고 되어 있다. 내부공사나 Renovation이라면 간판까지 내릴 필요는 없으니 아마 영업을 그만둔 건 사실인것 같다. 구글검색을 하다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그 레스토랑을 이용하던 많은 이용자들이 대안을 찾고 있다는 후기가 있다는 점이다. 제법 한국 중식 맛을 충실하게 내던 집이라 한국사람에게 인기가 있었으니 그 허탈함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고 나 역시 조금 아쉽긴 했지만 별다른 동요없이 지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언제부턴가 소위 말하는 맛집이라고 자주 가거나 집착을 하지 않았고 대체로 같은 종류의 식당이라도 여러군데를 다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맛있는 식당은 많고 너무 손님이 몰리면 식당의 노동강도가 올라가고 음식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과 문전성시를 이루면 자칫 자만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할 명분을 찾지 못할거라는 나만의 이유에서다. 무슨 짜장면 맛집 얘기를 이렇게 심각하게 하냐고 묻는다면 여기까지만 하고 더이상 웃자고 하는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음식도, 옷도,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려고 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서 찾자면 어떤 것을 너무 신뢰하고 의지하면 나중에 상실감도 크다는 사실을 여러번 경험까지 했던 탓이다. 영화 넘버3에 나온 대사 중 한석규와 이미연의 대사중에 나 얼마나 믿냐고 물었을때 '51%. 51%를 믿는다는건 100% 믿는다는거야. 49% 믿는다는건 하나도 안믿는다는 얘기고'라는 대사는 엉뚱하지만 내 생각을 꿰뚫는다. 그렇다. 100%는 믿지말고 딱 중간을 조금 넘어선 51%만 믿어보자. 이렇게 말하면 식당이나 의류브랜드가 무슨 연인도 아닌데 정을 덜 주고 더 주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소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최근의 일들을 통해 더더욱 편식하지 말고 브랜드를 골고루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열광하지만 반면에 적지 않은 것들에게 실망하고 심지어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배신감을 느끼곤 한다. 


1. 요즘은 검색엔진 뿐만 아니라 각종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열면 주변에 맛집을 찾아주고 Review(후기)를 공유하는게 너무나 일상이 되어 버렸고 호평을 받은 곳은 나날이 번창하고 혹평을 받은 곳은 장사가 잘 안되거나 발길이 끊겨서 망하기도 한다. 다양한 이유로 주변에 이런 경우를 쉽게 찾아볼수 있는데 이미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버린 꽤 유명했던 꽁지머리 요리사 마리오 바텔리(Mario Batali)도 성추행 스캔들에 연루되어 운영하는 여러개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The Chew”로 사람들이 다 출근하고 심지어 점심식사를 할 무렵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명의 요리사(요리관련종사자)들이 다양한 요리를 하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의 뿌리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 이탈리안으로 미국의 꽤 큰 휴일인 ‘컬럼버스데이’ 퍼레이드에도 패널로 참석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던 동네아저씨이자 요리사였다. 하지만 그는 미투운동이 시작되고 오래되지 않아 성추행사건으로 몰락하기 시작해 불과 1년여만에 그가 이름을 걸고 운영하던 여러개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른다. 미국은 특히 이런 범죄경력에 예민한데 지금 미국은 가히 성추행, 성폭력과의 전쟁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예계, 정치계, 그리고 스포츠계까지 그 썩은 뿌리가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그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 과정에는 한없이 좋아보이는 옆집아저씨 같은 그가 성추행범이 되면서 사람들이 받아들일수 없는 큰 비약과 괴리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레스토랑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의 레시피로 요리하는걸 즐겼고 맛도 괜찮아서 자주 해먹어보곤 했는데 더이상 그는 좋은 옆집아저씨가 아닌 범죄자였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더이상 TV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수 없었고 나왔다고 해도 더이상 봐줄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를 51% 정도 좋아했었나보다. 유주얼서스펙트의 절름발이이자 카이저소제, 케빈스페이시는 어떤가. 절름발이 연기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타고 아메리칸뷰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쥔 그야말로 대배우의 대열에 들어서서 탄탄대로를 정주행 할 일만 남았는데 미성년자 성추행이력으로 더이상 공공장소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Netflix 시리즈- 사실 Netflix는 그저라고 하기엔 꽤 큰 미디어지만 어쨌든 성추행사건 이후로 모든 일정에서 하차했다- ‘House of Cards’에만 얼굴을 비치고 있다.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 출처 구글.
케빈스페이시. 출처 구글.

2. 소위 아메리칸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통나무도 들어갈 법한 마대자루같은 바지에, 보통 체격의 사람 둘이 들어갈 정도의 품이 넉넉한 셔츠를 입고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아서 미국에 와서 이런저런 많은 브랜드를 입어보면서 나랑 잘 맞는 옷들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마침내 몇가지 브랜드를 찾았고 그 중에 ‘Theory’라는 절대 저렴하지 않지만 그래도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요긴하게 입을만한 브랜드로 아껴주고 있었는데 조금 애정을 주려는 찰나에 이 브랜드가 No Japan 이라는 저인망에 걸렸다는걸 알게 됐다. 내 체형과 잘 맞는 브랜드라 아쉽긴 했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는게 자랑스러운 나에게 굳이 일본에 돈을 보태주는 소비를 하고 싶진 않았다.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는 진작에 내 기호속에서 사라졌지만 Theory는 일본브랜드가 아니었다가 일본자본에 넘어간 브랜드라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나와는 여기까지가 인연이었나보다 하고 끈을 놔버렸고 폭탄세일한다고 오는 메일도 이제는 귀찮기만 하다. 한국이 내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긋지긋한 조국도 아니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나마 야단스럽지 않게 내 조국에 작은 힘 보태는건 못할게 뭔가. 


얘기하다보니 이거 너무 멀리 가는게 아닌가 싶은데 첫 사랑이 왜-특히 남자에게는 더욱 더- 아름답고 아련하고 지울수 없는 기억이 되는가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 스스로 생각하는 이유를 얘기하곤 하는데 나도 감히 한마디 거들어 보자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그렇지만 서투르고 어눌해서 이루어지지 않음에 더욱 가슴아프고 평생 추억속에 작은 공간을 비울 수 없는거 아닐까. 사랑은 계산하면 안되지만 초반에 너무 힘빼면 첫사랑 못지않은 중간사랑, 끝사랑과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내 궤변이 조금은 합리화가 될지 모르겠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사랑도 마라톤과 같다는 가정을 누군가 기꺼이 동의해준다면 사랑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도 사랑도 끝을 알 수는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결승선을 알 수 없는 마라톤과 같다고 해두고 그만 단골집 궤변을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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