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전하는 이민 길라잡이
어쩌다 미국에 온지 8년쯤 되었는데 참 식상한 표현이란걸 알지만 시간 참 빠르단 말보다 적절한 말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마흔살을 눈앞에 두고 시작한 미국생활이 이제는 몸도 마음도 그럭저럭 적응해 가는 나 스스로를 보고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요즘 커뮤니티를 보면 이민을 가고 싶어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이민가고 싶은데 현지에서 몇년 살아봤으니 미국생활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비교적 젊고 일할 날이 30년 이상 남았다면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고 40대라면, 그리고 부양할 가족이 주렁주렁 달려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보라고 하고 싶다. 미국에 와서 직장을 잡고 돈벌고 살면 잘 살면 되는거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할수 있지만 사실 미국에 건너오는 순간 몸은 성인이지만 마치 새로 태어난 것 처럼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되는게 영어라는 언어는 둘째치고, 그 나라의 문화, 사회 시스템 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생각해보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것이다. 이민은 그 나라의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생존해 가는 과정이다.
한국에서 공기업을 다니는 남편과 교사인 부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하고 싶다는 얘길 듣고 한때는, 아니 지금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안정적인 기업에 다니는 분들이 왜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자식을 더이상 한국의 지옥같은 교육, 입시시스템에 두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얘길 들었을때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었다. 내가 이들의 이민에 반대하는 첫번째 이유는 스스로를 위한 이민이 아닌, 자식을 위한 이민이라는 점이다. 아이가 부모님께 찾아와 도저히 한국에서 공부하기 어려우니 제발 미국에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했다면 모를까 이민이 부부들 스스로의 삶과 만족을 위해서 결정되어야지, 의향도 모르는 자식의 교육을 위한 삐뚤어진 맹모삼천지교가 그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식을 미국에 데려다 놓으면 자식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거라는 생각도 애초에 그릇된 인식의 출발이다. 물론 자식이 대단히 성공적인 삶은 아니라도 적어도 입시지옥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반문할수도 있지만 미국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적지않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본인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부부가 새롭고 더 좋은 삶의 터전과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원해서 이민을 원하는건지, 자식을 성공시켜 부양받고 살기 위해 이민을 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길 바란다. 둘째는 신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직업이 안정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이민생활이 모두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시민권자, 영주권자를 선호하고 비자프로그램을 지원하지 않아서 시민권, 영주권이 없다면 좋은 직장 얻기가 수월치 않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그들을 원하는 회사들이 비자나 영주권을 지원해주는 경우는 있긴 하지만 대개 비숙련직으로 미국에 오시는 분들이-한국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대기업에 근무했던 분들이다- 미국에 오셔서 하게 되는 일은 건물청소, 식당서빙, 닭공장 등 단순직업이 대부분인데 이마저도 아무나 할수 없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단순노동, 육체노동에 수입도 넉넉치 않은채로 오래 살게 되면 이민생활이 즐겁고 가족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거운 주말 여가생활을 즐길수 있겠는가. 그리고 주말 여가시간을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것도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근처 공원에 가서 하이킹하고 바베큐를 하는 등 가족들과 가볍게 나들이 하고 나서 공원입장료, 한국보단 싸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물가, 비싼 도료통행료 영수증을 받고 나면 마냥 웃으면서 즐길수 없게 된다. 세번째 이유는 한국과 다른 사회시스템과 문화적 차이다. 미국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고 수퍼마켓, 델리, 레스토랑, 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한국분들은 세금을 아끼려는 목적으로 소득을 축소해서 보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은퇴 후 소셜연금(한국의 국민연금) 수령금액과 직결된다. 따라서 스몰비즈니스를 하면서 소득을 적게 신고한 한국분들은 당장 내 주머니에서 세금은 적게 나가지만 은퇴 후 소셜연금이 적고 퇴직연금같은 프로그램도 의무가 아니라 가입이 안되었다면 은퇴 후의 삶은 뻔하다. 결국 젊을때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자식까지 잘 키워놨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면 다시 가난한 삶으로 돌아가는게 현재 한국 이민자들의 현주소이다. 은퇴할 나이가 되면 한국이민자들과 백인들의 삶은 극명하게 나눠진다. 여름에 휴양지에 가보면 한 절반은 은퇴한 백인 노인들인데 낮에는 대개 물놀이를 하거나 태닝을 하면서 책을 보고 저녁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고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등 그들에게서 뭔가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은퇴한 한국 이민자들은 노쇠한 몸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하거나 집에 머물면서 TV를 보거나 근처 공원에 앉아서 쓸쓸히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은퇴 후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잘 만들어진 사회시스템을 한국 이민자들은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면서 당연하게도 다른 보통의 미국인들과는 다른 은퇴 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잘 정착하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이민자 분들도 많겠지만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 열에 여섯, 일곱은 내가 얘기한 문제들 중 적어도 한 두가지는 겪고 있다고 말하면 좀 과장일까. 지구상에 유토피아는 없고 어딜가도 사는건 쉽지 않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은 그 이하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이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을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