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편지 #8] 새벽,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by 김저녁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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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서 산책을 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아내는 직장 동료들과 서울 인왕산 성곽길을 걷기로 했다고 가고, 나 혼자 남은 휴일입니다. 반납 기한이 지난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남한강 강변길을 걸었습니다.


휴일 강변에는 자전거를 타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들, 다정히 손 잡고 산책하는 부부, 아빠와 함께 운동기구에서 노는 꼬마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벤치에 앉아 흐드러진 강가 수양버드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도 눈에 띕니다.


한참을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잠시 벤치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시 앉아있는 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갑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 서쪽으로 향하고, 새들은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다니고, 아파트 공사장의 망치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왜 여기에 와있지'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마주하게 됩니다. 잘 한 거보다는 잘못한 것, 즐거운 일보다는 아쉬운 과거가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막 내지르던 것들도 곰곰히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그런 마음을 이면우 시인은 '거미'에서 잘 다스리려고 에지간히 노력합니다.


거미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함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미는 구청 배관공으로 일하는 시인 자신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샘 작업을 하는 노동자와 거미의 일생이 다르지 않은 거지요. 자식들을 거느린 가장에게 '왜'라는 물음은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벤치에서 일어나 사람 속으로 다시 섞여 돌아왔습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 아니라, 홀로 망을 짜는 거미의 마음을 읽는 계절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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