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에는 벌레는 땅속으로 숨고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다. 춘분도 낮밤 길이가 같은데, 추분이 약 10도 정도 높다고 한다. 춘분이 겨울의 끝이라면 춘분은 여름의 끝에 오기 때문이다. 추분이 지나면 논밭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린다.
어렸을 적 김제평야에서 자랐던 나는 이맘 때면 논에 물을 다 빼고 우렁이나 미꾸라지를 잡곤 했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논에 새들을 쫓으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부엌에 선 채로 막걸리에 우렁무침을 드시곤 했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서는 하루 종일 '워이~ 워이~" 새 쫓는 소리로 가득했다.
어떨 때는 대나무에 비료포대를 찢어서 붙인 걸 휘두르면서 새를 쫓았다. 따가운 가을볕을 피해 개울가에 우산을 펼쳐놓고, 그 아래서 대나무 낚시로 붕어를 건져올리기도 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질 때면 짐을 챙겨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김제가 고향인 정양 시인의 '추분'에는 밤이 길어지면서 늘어나는 근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근심 때문에 근심하는 것이 인간의 심사다.
추분
밤이 길어진다고
세월은 이 세상에
또 금을 긋는다
다시는 다시는 하면서
가슴에 금 그을수록
밤은 또
얼마나 길어지던가
다시는 다시는 하면서
금 그을수록
돌이킬 수 없는 밤이 길어서
잠은 이렇게 짧아지나 보다.
사람 사는 것이 후회의 연속이다. 다시는 그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해도 또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얼마나 미운가. 후회하고 다짐하고 또 후회하고 다짐하라고 추분 지나 밤이 길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옛날 어른들이 새벽 잠이 없었던 것이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추분날 곰곰히 생각해 본다. 아직 오지 않은 근심 걱정일랑 다 제쳐두고 추분 지나면 동면 수준의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