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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매니아650v

by 김저녁꽃

롯데 니아650v

오디오가 폐가전과 함께
대문 앞에 버려져 비에 젖고 있다

서른 해 가까이 한 가족의 삶을
오롯이 지켜보았을 낡은 오디오

성대결절로 고음을 낼 수 없는 가수처럼
생의 마지막은 투웨이 스피커로도
서라운드 입체음을 낼 수 없었으니
볼륨을 높일수록 안타까운 음역

30년 전 신혼집 단칸방에 울려퍼지던 모짜르트
한여름밤 모기장 속에서 파닥거리던 큰아이
잦은 이사에도 낯선 집의 공기를 부드럽게 바꿔줬던 정태춘 양희은 같은 노래들

플러그에서 전원이 뽑힌 순간부터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담으려는듯
동그란 귀를 쫑긋 세운 오디오

깊은 산속 고라니와의 조우처럼
침묵의 순간을 고요의 영원으로 바꾸는
검정 두 눈을 가진 롯데 매니아650v

오디오 스피커가 두 개인 것은
하나가 노래하면 하나는 듣기 위해서다

대문 앞에 전원이 없어도
홀로 노래하는 오디오 하나가
그친 비에 해맑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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