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한 편의 시가 삶의 위안이 된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몸살을 앓는 사람에게 시는 구원의 등불이 되기도 했고, 삶에 지친 이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인에게 멋진 시를 베껴 쓴 연애편지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그럴듯한 시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우정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가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실용서적이 차지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읽는 책의 대부분은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경제경영서가 대세입니다. 가방 속에서 시집을 꺼내 읽는 사람은 희귀동물처럼 비춰지기까지 합니다. 이해인 시인은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는 사람을 보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고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싶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져 독자들이 변심(?)을 한 건지, 아니면 시 스스로가 그 빛과 힘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시를 읽지 않는 세상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정호승 시인은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습니다.
80년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밀리언셀러에 오른 이래 90년대 들어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시는 이념이 종말을 고하던 시대의 끝자락을 서성이던 많은 청춘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라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그 후, 시가 무기였고 희망이었던 세대들은 각자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찾아 나섰고 시는 점점 사람들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말 즈음 황지우 시인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들고 나와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향해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90년대 말 이래 시집을 읽는 독자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세기말 황지우 시인의 시집이 반향을 일으킨 이래 21세기에 들어서는 만부 이상 팔리는 시집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처세와 재테크를 강조하는 대다수 베스트셀러 책들은 아직도 몇 십 만부씩 팔려나갑니다. 돈이 곧 가치판단과 정의의 기준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부자들의 인생스토리가 시적인 감동을 준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물질을 좇는 세태이기에 시인의 자리는 더욱 소중하고 전할 말이 많을 듯 합니다. 우체국이 좁은 골목길로 밀려나고, 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에도 여전히 시인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시인들이 쓰는 사랑의 편지를 풀어서 독자들에게 '나에게 쓰는 자서전 편지' 형식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시를 쓰기는 어려울지라도 '좋은 시를 읽으며 오늘의 나를 성찰하는 편지를 쓰는 것'은 누구나 시도해 볼 만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삶의 저녁이 올 때 쯤 괜찮은 자서전 한 권 쓰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시집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담쟁이 덩굴처럼 얽혀있습니다. 그 덩굴들이 마르고 갈라진 사람 사이의 틈을 찾아가 나무가 되고 숲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서전 편지’가 여러분 삶에 짧조름한 소금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