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편지 #3] 세상사 복잡할 때 수연산방에 가라

by 김저녁꽃
서울 성북동 수연산방

사람들은 잇속을 따지기 좋아합니다. 내가 준 만큼 받고 싶어하고, 행여 덜 받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상하기도 하죠. 경조사에 부조할 때도 그렇고,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합니다.


얼마 전 후배가 모친상을 당했다며 카톡, 문자,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순간,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부조를 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명록을 꺼내서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내가 그 동안 이렇게 계산적으로 살아왔구나'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배에게 부의금을 보내고 난 후 아주 형식적인 감사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뭐야 이 친구, 전화는 아니라도 뭔가 성의 있는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가 이내 '코로나네 뭐네 힘든데 뭘...'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낸 책 중 재고로 남은 것을 처분하려고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구매 요청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후배에게도 보냈는데, 알았다고 하더니 감감 무소식입니다. '아니 평소에 연락도 안 하다가 모친상 당했다고 사방팔방 문자를 보내더니, 내 요청을 씹어?' '참, 기본이 안된 사람이구만'... 살짝 화가 났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고 목표했던 책 판매에 몰두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구매를 해주었습니다. 글쎄 사줘도 그만 안 사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분이 "김저녁꽃씨의 앞날에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할게요" 라는 격려 문자까지 보내왔습니다. 순간, 감동의 눈물이 핑~


그날 저녁 잠이 들기 전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의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말이죠.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그래, 나를 도와주려는 고마운 분들만 생각하자. 그리고 누군가 도움을 청해오면 기꺼이 손을 내밀자' 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고두현 시인의 '수연산방에서-무서록을 읽다'에 이런 마음들이 잘 담겨 있습니다.


수연산방에서

-'무서록'을 읽다


문향루에 앉아 솔잎차를 마시며

삼 면 유리창을 차례대로 세어본다

한 면에 네 개씩 모두 열두 짝이다


해 저문 뒤

'무서록'을 거꾸로 읽는다


세상일에 순서가 따로 있겠는가

저 밝은 달빛이 그대와 나

누굴 먼저 비추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누구 마음 먼저 기울었는디

무슨 상관 있으랴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에 앉은 동산도 두 팔 감았다 풀었다

밤새도록 사이좋게 노니는데


시작 끝 따로 없는

열두 폭 병풍처럼 우리 삶의 높낮이나

살고 죽는 것 또한

순서 없이 읽는 사람이

먼 훗날 또 있으리라.


수연산방에서 시 읽기 모임(왼쪽 필자)


그렇습니다. 세상사 순서, 격식, 경중 따질 필요 없습니다. 잘나고 못나고도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살아 숨쉬는 데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사 만사 다 귀찮을 때 수연산방에 가서 솔잎차를 마시며, 허리띠 풀고 쪽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누가 먼저 가든 순서는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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