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가 있는 일상
나는 여느 때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안정감을 주지만,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런 일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필요했다. 항상 같은 길을 다녀도 계절에 따라 길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같은 일상 속 조금은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멀리 사시는 부모님이 오랜만에 오시기로 하셔서 식탁에 놓을 꽃다발을 샀다. 몇 년 전 꽃다발을 1-2년 정기 구독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흥이 떨어지고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구독을 끊었었다. 이후로 직접 꽃을 사는 건 오랜만이었다. 꽃을 꽂으려 화병을 찾다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나폴리 센트럴 역 앞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일어난 참이었다.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을 걷으니 역 앞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활기찬 풍경이 펼쳐졌다. 전날 밤늦게 도착하여 스산하게 느껴졌던 나폴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유리컵을 가득 채운 꽃 한 송이. 화병에 꽃을 꽂은 것이 아니라, 입구가 넓은 유리컵에 꽃송이를 띄워놓았다. 보통의 높다란 화병은 예쁘기는 하지만 크지 않은 테이블 위에서는 시야를 방해할 때가 있다. 반면 낮은 유리컵 속의 꽃은 한송이로도 충분히 테이블을 빛나게 만들었다. 물론 그만큼 식사의 아름다움과 즐거움도 커졌다.
나폴리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꽃 한 송이의 줄기를 짧게 잘라 입구가 넓은 유리컵에 띄워 식탁에 놓았다. 꽃 한 송이로 주방이 생활의 공간에서 낭만의 공간이 되었다. 왜 그때의 감탄을 잊고 있었을까? 보통의 꽃다발보다 더 돋보였던 꽃 한 송이를. 그때의 감탄이 나의 삶 속에서 다시 느낌표를 찍었다.
그래. 내가 찾던 것은 바로 이거야. 삶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도, 아! 하는 감탄이 있는 일상! 세상을 살아가며 느꼈던 감탄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나의 삶으로 연결해보자. 그럼 일상도 감탄이 되지 않을까?
그때부터였다. 감탄을 수집하고, 나의 삶으로 연결해보기 시작한 것은. 책을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여행을 하면서, 혹은 대화를 하며 종종 느낌표를 던져주는 무언가를 만난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해 놓기도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순간의 감탄은 노트 안에만 있다. 감탄의 순간을 나의 삶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여행지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향이 좋아 집에 디퓨저, 인센스 스틱을 놔두기 시작하고, 어느 공간을 방문했을 때 기다렸다고 말해주는 듯한 흘러나오던 음악이 좋아 집에 지인을 초대할 때 미리 음악을 틀어놓게 되었다.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의 일상에 산책을 넣게 되었고, 어떤 책을 읽고 아침에 글을 쓰는 의미를 새로 부여하게 되기도 하였다.
'세상 밖의 감탄을 삶으로 연결시킬 때의 즐거움'이라는 감각을 경험한 후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살아가며 마주치는 경험에도 의미가 더해졌다. 나는 좀 더 촉수를 세우게 되었고 일상은 좀 더 즐거워졌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감탄의 순간을 나에게로 연결할 때 나의 일상도 감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