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탐 Jul 11. 2023

[기고글] 산본의 시작과 군포의 미래를 말하다

김진애 박사 대담 / 군포문화재단 <담다> 2021_가을



산본 신도시가 생긴 지 30여 년. 

그사이 도시는 수많은 시민들의 삶과 시간을 품으며 발전해왔다. 

앞으로 산본, 그리고 군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산본 신도시 도시설계에 참여했던 김진애 박사와 군포문화재단 성기용 대표가 만나 도시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산본, 군포와의 인연


군포의 산본 신도시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진애 박사다. 방송과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김 박사는 산본 신도시와 인연이 깊다. 성 대표는 우선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18대 이후 21대에서도 국회의원직을 맡았던 김 박사. 21대 국회에서 그녀에게 맡겨진 일터는 법제사법위원회였다. 


“법사위는 정쟁이 뜨거운 곳이고, 제가 있던 중에도 여러 이슈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국토위원회의 주택 정책 등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러다 서울시장 직에 출마하며 의원직을 그만두었고, 이후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며 잠시 쉬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휴식기. 그녀는 휴식기도 새로운 책 출판 준비 등으로 알차게 보냈다. 최근에는 방송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다양한 활동을 재개하는 중요한 시기. 그런데도 군포문화재단 소식지 [담다]와의 대담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준 것은 김 박사에게 산본과 군포가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산본을 떠올리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수리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꼭 그 노래와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산본이 제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 박사의 뿌리는 산본에 있다. 150여 년 동안 3대에 이르는 가족들이 이곳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산본 할머니 댁에 수시로 놀러 왔다. 수리산을 뛰어다니고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린 김 박사에게 산본은 신나는 모험의 땅이었다.


오래 이어온 인연에 또 한 번 특별함을 더하게 된 건 1980년대 산본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전세난과 부동산값이 문제가 되면서 당시 정부는 수도권 일대에 여러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산본도 그중 하나였다. 주택공사 연구원으로 일하던 김 박사도 산본 신도시 설계에 참여했다. 


“최종 대상지를 보니 산본이 들어 있더군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산본 지역을 제가 있던 주택공사에서 담당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떨렸습니다.”


 




산본을 위한 특별한 도시계획


그렇게 만들어진 산본 신도시는 30년 넘게 여러 시민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성 대표는 “1기 신도시 중 산본이 가장 완성도가 높고 모범적으로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산본 신도시를 만들 때 어떤 기준으로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는지 물었다. 김 박사는 설계를 진행할 때 염두에 두었던 두 가지 기준에 대해 말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는 것과 ‘지역의 자연적 특성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본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김 박사와 설계팀은 산본의 구성 블록을 작게 만들고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블록의 크기를 너무 크지 않게 설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커다란 블록으로 만들어진 대단지만 있으면 걷기 싫은 도시가 될 수 있거든요” 


또한 다른 수도권 도시와의 연결성도 놓치지 않았다. 수도권과 연결되어야 더 생동감 있는 도시가 되고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시 접근성을 염두에 두고 하나하나 세밀하게 개발할 땅을 찾아 나갔다. 그 과정에서 수도권과의 연결성 강화를 위해 지하철과 인터체인지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계에 안산과 연결되는 지하철과 산본으로 들어오는 인터체인지를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산이 추가되는 문제도 있었고, 당시 하루빨리 많은 가구를 만들어 공급하려는 정권의 뜻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다행히 우리 뜻을 관철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산본 지역에 거주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계획이었다. 일자리를 위해 서울 등 수도권 접근성이 필요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거주할 곳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과 전문직 종사자들. 김 박사는 이런 사람들이 유입되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곳을 상상하며 도시를 계획했다. 무엇보다, 지역 내에서 큰 계층 분화 없이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잘 섞여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목표로 했다. 이런 노력과 탄탄한 계획이 현재 산본, 군포의 밑그림이 됐고 오늘날 높은 주거 안정성을 자랑하는 도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최초 설계자의 눈으로 본 산본


군포시민의 삶의 질 만족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2015년 조사한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의 ‘지역주민 삶의 질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군포시민들의 만족도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만족도 상위 부문에는 생활 인프라(2위)와 교통(5위) 부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산본 신도시 설계에는 장점만 있었을까? 최초 설계자의 눈에 보이는 아쉬운 점이 궁금했다. 성 대표는 김 박사가 본 산본 신도시의 장점과 아쉬운 점에 관해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 박사는 우선 설계적 측면에서의 장점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꼽은 장점은 산본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도시 구조상 사람들이 가운데 중심 상업 지역으로 내려와서 모이게 되고, 중심 상업지와 시청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탁 트인 전경과 함께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수리산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히 기분 좋은 구조죠.” 


또한 평탄한 중심지도 장점으로 꼽았다. 걷기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 95세가 된 김 박사의 부친도 여전히 산본 중심가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 지역이 평탄해서 어디를 가든 높낮이 없이 다닐 수 있으니 노인이나 아이들도 중심가를 돌아다니는 데에 무리가 없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중심 상업지에 특색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보완이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면 산본역이나 금정역 주변도 전반적인 리모델링을 하게 될 텐데, 김 박사는 이때 도시가 더욱 특색 있는 모습으로 변하길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건축 관련 아쉬움이 있다. 도시 초창기에는 건축물들과 수리산이 잘 어울려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상업 건물 등 여러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기존 분위기, 정체성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들이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길을 걸어 다니는 많은 사람과, 지역에 만족하는 주민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크다.




 

군포 스타일의 문화도시


성 대표는 마지막으로 군포의 발전 방향성에 관해 물었다. 군포문화재단과 군포시가 문화도시로서의 군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시행 중이기도 하다. 김 박사의 추천이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김 박사는 우선 문화도시의 정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화도시’라고 하면 단순히 ‘문화적 풍성함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김 박사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도시에 대해 말한다. 


“꼭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곳이 아니더라도 주말을 즐기고 싶을 때 손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즐길 거리가 다양한 곳도 충분히 문화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김 박사는 군포가 그런 수요를 가진 사람들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며 너무 큰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많이 참여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도 했다. 그러면 자연히 ‘거기 어린이들 지내기 좋고, 놀러 가기 괜찮데!’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 말이다.


물론 도시의 ‘문화적 요소’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군포나 산본의 경우 어린이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도시에는 특히 13세 미만 인구가 다른 곳보다 많은 편이니까요. 이에 맞춰 학교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어린이들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발굴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외에 걷기, 트레킹 등도 좋은 소재다. 수리산에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는 길이 많아, 트레킹을 활용하는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군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훌륭한 문화적 요소가 된다. 김 박사는 리영희 작가를 예로 들었다. 


“리영희 박물관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군포에 대해 가졌던 마음과 스토리는 각별하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문인이나 언론인들이 여전히 많이 찾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활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김 박사는 산본 신도시와 군포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좋은 도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군포는 관련 시설들이 잘되어있고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죠. 부디 도시를 마음껏 누리시고 수리산 자락 아래에서 즐겁게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고글] 삶과 가락을 나누는 따뜻하고 아늑한 사랑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