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편지로 위로해 주다
엽서 한 장을 꺼내 들고
펜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To. 나연
나에게 쓰는 편지
뭐가 그리 불안하고
뭐가 그리 짜증 나서
안달이 난 거야?
오늘 다 할 필요 없어
완벽하게 만들 필요도 없고
그게 너를 해친다면
그 무엇도 소용이 없어
설거지하는데
도통 닦이지 않는 프라이팬
청소기 다 돌렸는데
구석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하나하나 화낼 필요 없다
다시 하면 된다
너의 감정을 다스릴 자격이 없어
너의 기분을 움직일 자격이 없어
이 정도면 오늘 하루 훌륭하게 보냈어
체크리스트 다 지우지 않아도 괜찮아
잘했어 수고했어
오늘을 잘 살아준 것만으로도 대견해
여전히 화가 안 풀려? 분해?
그럼 찔끔 흘리지 말고 펑펑 울어봐
속 시원하게 소리 내서 엉엉
나는 그럼 한결 속이 편해지더라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
혹시 눈물이 아직 남았다면
마지막으로 샤워기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흘러버리자 울어버리자
오늘 하루 내가 담고 있던
걱정, 짜증, 우울, 미움, 시기, 질투
모두 물로 씻겨내려 버리는 거야
저것들 다 수용성이라 물로 직방이래
잘했어 너무 잘했어
고단한 하루 끝
소리 내어 울어낸 것도 용기
이렇게 편지 쓴 것도 용기
이거면 됐다
이제 평온하게 잠들 수 있기를
아무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들었다가
아침 알람으로 깨어나기를
다음에도 답답할 때
또 편지에서 만나자
얼마든지 위로해 줄게
From. 나연